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는 1998년 3월 프랑스 하원 연설에서 `제3의 길(The Third Way)`이라는 개념을 언급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 새로운 이념 모델은 블레어의 정책 브레인인 앤서니 기든스가 자신의 저서 `좌우를 넘어서`에서 처음 제시했다. `제3의 길`은 전후 세계정치를 주도해왔던 전통적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자는 `실용주의적 좌파노선`으로서 1960년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래 정치적 상상력을 가장 많이 자극해온 소중한 깨우침이다.
지난 4·13총선을 통해 유권자들이 갈라 준 한국의 정치지도는 지금까지의 정치적 사고방식(思考方式)의 혁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뉘앙스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대로 `3당 체제`를 엄명한 민심의 저변에는 오랫동안 극한대결을 추동해온 양당제도에 대한 반성이 오롯이 존재한다. 그동안 숱한 질타에도 불구하고 철옹성처럼 지켜온 정치인들의 고질적 구태들을 완전히 바꾸라는 마지막 경고인 것이다.
선거결과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두 명(이정현·정운천) 당선되고, 보수의 핵 대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김부겸)와 진보성향 무소속 후보(홍의락)가 당선된 것은 결코 가벼이 여길 사변(事變)이 아니다. 양쪽에서 두 명씩, 네 사람의 당선에는 숫자의 많고 적음을 훌쩍 뛰어넘는 시대적 상징이 깃들어 있다. 이제야말로 동서로 나뉘어 이성을 꽁꽁 묶어둔 채 지속해온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의 아귀다툼으로부터 놓여나야 한다.
정치인들은 이제 다수의 힘으로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미개한 권력을 휘두르려는 의도 자체를 싹 버려야 한다. 국민들은, 정책에 따라서 과감하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정치를 펼치지 않는 정치세력에게는 즉각 등을 돌리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국민들은 이제 제아무리 뜻이 좋은 일이라도 `죽어라 싸우다가 혼자 마음대로`하는 정치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내린 셈이다.
TK정치의 딜레마는 오랫동안 한 정당에만 지속해온 짝사랑의 관성에서 비롯된 혼란 언저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TK유권자들의 전폭적 지지는 정치인 `박근혜`를 대통령까지 올려준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 무조건적 지지는 결국 `친박·진박` 정치 인사들을 온통 오만방자의 늪에 빠트린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병폐로 작동하고 말았다. `친박`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정치행위가 급격히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마당에 TK정치는 시대정신을 충실히 반영하고, 선진정치를 열어가기 위한 파격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됐다. TK정치인들은 패거리정치에 길들여진 구닥다리 행동양식부터 깨끗이 털어내야 한다. 목전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근시안적 행태를 지속해왔던 관성으로부터 아주 벗어나야 한다.
TK정치는 이제 국민들이 원하는 `제3의 길`을 찾아내어 이 나라 정치의 중심역할을 계승해야 한다. 더 이상 `꼴통보수`라는 명예롭지 못한 비아냥에 애써 귀 닫은 채 `묻지마 지지`의 덫에 발목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상식과 합리적 판단의 근거가 좀 더 폭넓게 공유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담론들이 지역사회에 출렁거리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의 아니게 굳어온 몹쓸 선입관과 고정관념들부터 말끔하게 깎아내는 일이 필요하다. TK정치는 보수정치세력의 진화를 위한 통 큰 `빅 텐트` 설치에 앞장서야 한다. 과거의 쓰레기통 엎어놓고 지나간 잘잘못만 시시콜콜 따지는 행태, 국민의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는 정책과 법안들을 놓고 바꿔먹기에만 열중하는 정치협잡을 쓸어내야 한다. 생산성 빵점짜리 세금낭비의 상징으로 허풍허세만 탐닉하는 저질국회를 혁신해내야 한다.
혹시나 지난 2009년 대구시와 광주시가 `달구벌`과 `빛고을`두 도시의 옛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달빛동맹`에 꽉 막힌 정국을 뚫어낼 강력한 힌트가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