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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상생의 손과 다비드상의 오른 손

등록일 2016-07-08 02:01 게재일 2016-07-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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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강일 서울대 강사

◇ 서로를 갈망하는 두 손

호미곶에는 엄청나게 큰 손이 두 개나 있다. 바다에는 오른손, 육지에는 왼손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데, 그 이름이 `상생의 손`이다. 1999년 12월에 완공된 이 조각에는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이 담겨 있다. 상생(相生)은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감”이라는 뜻이다. `나`로 인해 `너`의 삶이 행복해지고, 행복해진 `너`의 삶이 다시 `나`에게 영향을 주어 내가 또 행복해지고, 그런 식으로 행복이 끊임없이 증폭되는 선순환(善循環)의 관계, 이것이 상생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신지? 바다의 오른손, 육지의 왼손. 이 두 손이 만나면 어떻게 악수를 할까. 악수든 하이파이브든 오른손끼리 하는 법인데 말이다. 바른손 두 개를 만들든지, 아니면 하나는 황동, 다른 하나는 청동으로 만들었더라면 두 사람의 손이라는 것을 더 쉽고 분명하게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럼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손인 걸까. 물론 상생은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바다의 손도, 육지의 손도 대한민국의 것이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한 몸인 우리가 우리의 손을 맞잡고 하나 된 모습으로 새천년을 열어가자는 뜻으로 본다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저 손이 여전히 불만이다. 손과 손은 그렇게 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갈망하지만, 발이 없는 손은 서로에게 가 닿을 수 없다. 그래서 저들은 서로의 빈손만을 보고 있다. 벌써 16년째 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만날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하다니 참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 다윗의 손에 하프를

조각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뭘까, 혹시 생각해본 일이 있으신지? 나는 조각가가 아니어서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손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정말 그럴 듯한 손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1820년 밭을 갈던 농부에 의해 발견된 밀로의 `비너스`는 팔이 없다. 하릴없는 미술사가들은 남아 있는 흔적으로 팔의 형태를 추측해 볼 수밖에 없다. 오른손은 흘러내리는 키톤(Chiton)을 부여잡고, 왼손에는 아마 사과를 들고 있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팔의 흔적 밖에 없으니 그 실제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마음대로 상상해도 된다. 팔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군,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한 무명의 조각가가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뛰어난 비너스를 만들어놓고 손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마치 누군가의 잘못으로 떨어져 나간 것처럼 조작한 것이 아닐까. 그녀의 왼손에 어울리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손인 것 같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의 손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무례하고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밀로의 조각가는 이런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하나 더 만들기는 무리여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팔 만드는 것을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 바다보다 구름이 더 일렁이는 해 뜰 녘, 사람들이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바다의 손과 육지의 손이 큰 소리로 서로를 부르고 있다. 그 소리를 모두 삼켜버린 파도는 시치미를 떼고 너울대고 있다.
▲ 바다보다 구름이 더 일렁이는 해 뜰 녘, 사람들이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바다의 손과 육지의 손이 큰 소리로 서로를 부르고 있다. 그 소리를 모두 삼켜버린 파도는 시치미를 떼고 너울대고 있다.

내가 가장 형편없다고 여기는 손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다. 3m에 이르는 거인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돌팔매를 들고 출전하는 다윗의 당당함과 긴장감을 다비드 상은 잘 표현하고 있다.(아시겠지만, 다윗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다비드가 된다.) 그렇긴 하지만 다비드 상의 손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미술사가들도 이것을 알고 있었는지, “원래 피렌체 대성당 지붕에 올릴 것을 고려해서,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손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기형적으로 크게 만든 것입니다”라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다비드`상은 손이 크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손 모양이 문제다. 허벅지 부근의 오른손은 실제로 네댓 개의 돌멩이를 쥐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오른손은 무언가를 거머쥔 것도 그렇다고 쫙 편 것도 아니어서 어딘지 모르게 어정쩡해 보인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저 손이 어색한 이유는 미켈란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있는 것 같다. 성경에 따르면 골리앗과 싸우기 전 다윗은 양을 치고 하프를 타는 순박한 소년이었다. 그의 하프 연주는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두통으로 고생하던 괴팍한 사울왕도 아픔을 잊을 정도였단다. 그런 다윗이 어쩌다 갑자기 전쟁에 나가게 되었는지 성경은 이 부분을 자세히 적어 놓지 않았다. 불경스럽지만 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그 둘은 실제로 싸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설령 싸웠더라도 다윗은 돌팔매가 아니라 하프를 들고 나가지 않았을까? 그의 연주에 골리앗뿐만 아니라 적군도 아군도 모두 감동해서 무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상상하면 흐뭇해진다. 물론 현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 하나 쯤 있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혹시 피렌체에 들를 일이 있으시다면 다윗의 손에 하프를 들려주시길.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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