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파울로 코엘료 지음·오진영 번역문학동네 펴냄·장편소설
`연금술사`로 유명한 세계적 작가 파울로 코엘료(69). 그만의 독보적인 필치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우리 영혼에 깊은 울림을 전하는 코엘료는 발표작마다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왔다. 데뷔작 `순례자`를 발표한 지 30년이 되는 2016년, 신작 장편소설 `스파이`로 돌아온 코엘료는 다시 한번 그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스파이`는 지난 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작품 일부가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 데 이어 이번에 작가의 모국인 브라질과 한국을 비롯해 4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스파이`는 1차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를 받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전설적인 무희 마타 하리(1876~1917)에 관한 이야기다. 코엘료는 그동안 여러 차례 주체적인 여성 화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역사적 인물을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한때, 일촉즉발의 전운이 가득한 한편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던 시기의 유럽을 배경으로 파블로 피카소, 프로이트, 오스카 와일드, 니진스키, 모딜리아니 등 당대의 문화 예술계를 주름잡던 인물들을 작품 곳곳에 직간접적으로 등장시키며 소설 읽는 재미를 더했다.
마타 하리는 동양의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춤으로 20세기 초반 파리를 비롯해 유럽 전역을 사로잡은 전설적인 무희다. 벨 에포크 시대, 유행을 선도했던 패셔니스타이자 화려한 무대 위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던 여성, 높은 인기만큼 엄청난 부를 얻었고, 당대 권력을 쥔 남성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며 그 관계를 통해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게 된 인물이다. 그리고 1차세계대전중 독일에 정보를 넘긴 이중 스파이 혐의로 프랑스군에 체포돼 총성 속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코엘료는 내년 마타 하리 사망 100주년을 앞두고 삶의 어느 순간에도 자유롭고 독립적이고자 노력한 그녀의 삶에 주목한다. 그는 지난 20년간 발표된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의 기밀문서를 비롯해 관련 서적, 기사 등 수많은 자료를 참고해`스파이`를 집필했다. 코엘료는 마타 하리가 파리 교도소에서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 오직 편지를 쓸 펜 한 자루와 종이 몇 장만을 요구했다는 사실에 착안해 편지 형식으로 마타 하리의 삶을 재구성해나간다.
소설은 프랑스 생라자르 교도소에 수감중인 마타 하리가 처형 일주일 전 자신의 변호사에게 써내려간 편지로 시작한다. 그녀는 이 편지가 자신이 죽고 홀로 남겨질 딸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그런 도전과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1부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보낸 평탄치 않은 결혼 생활 이야기, 그리고 마타 하리라는 이름으로 `꿈의 도시` 파리로 떠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1876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1895년 네덜란드 장교와 결혼을 해 인도네시아 자바 섬으로 떠난다. 남편의 폭력과 감시로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지속해나가던 어느 날, 그녀는 화려한 고대 인도 전통 무용을 추는 무용수들을 지켜보고 황홀경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곧 충격적인 사건을 목도하면서 지난 삶을 청산하고 `진정한 삶`을 찾아나설 결심을 한다. 마클레오트 부인은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마타 하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마침내 꿈에 그리던 파리로 향한다.
2부는 마타 하리가 파리에서 무용가로 성공해 부와 명성을 쌓고, 전쟁이 발발해 네덜란드에 갔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 펼쳐진다. 기메 박물관에서의 첫 공연이 성공을 거두면서 신문을 떠들썩하게 장식한 그녀는 이국적인 외모, 관능적인 춤으로 큰 인기를 누리면서 프랑스의 물랭루주, 밀라노의 스칼라극장 등 세계적인 무대에 서게 된다. 그리고 고위 관료들과 어울리면서 프랑스 사교계를 드나든다. 1차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부터 그녀를 주목해온 독일 정보부는 2만 프랑을 대가로 그녀에게 스파이 임무를 제안한다. 프랑스를 위해 일해오던 그녀는 중립국 네덜란드 여권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끊임없이 연합국 정보부로부터 의심을 받고 1917년 2월 13일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다.
3부는 마타 하리를 변호한 클뤼네 변호사가 그녀의 처형 전날 쓴 편지다. 그는 마타 하리가 어떻게 고위층과 관계를 쌓아나가면서 세계를 여행하고, 결국 이중 스파이로 의심받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독일측에 프랑스의 기밀 정보를 누설했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 패전을 거듭하던 프랑스의 희생양으로 처형에 이르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 보인다. 또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고 현기증이 날 만큼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 유럽, 전쟁중인 유럽의 역사적 한순간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