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식 통제사회에도 장마당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시장 규모가 400개를 넘어섰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농민들의 생필품 교환 장소로 출발한 장마당이 이제는 종합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본의 NHK가 북한의 시장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신발, 비누, 옷, 가구, 간이음식점의 모습이 북한 경제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좌판 위의 음식을 사먹는 군인들, 서로 자리싸움을 하는 북한의 아낙네들, 신발도 신지 않은 어린이의 구걸행각까지 눈에 띄었다.
원래 사회주의 국가 계획 경제는 시장 경제를 낭비경제라고 무시하고 배급 경제를 채택하였다.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폐단을 막기 위해 사유제를 인정치 않고 당과 국가가 경제 활동을 통제하는 경제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경제는 생필품의 부족 등 경제적 위기를 해소치 못해 붕괴되고 말았다. 오늘의 사회주의 중국도 결국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정치는 공산당이 철저히 장악하면서도 경제는 시장에 맡겨 오늘의 경제 대국이 된 것이다.
북한에는 `노동당`과 `장마당`이라는 두 개의 당이 공존한다는 말이 있다. 북한 땅에 장마당이 증대되고 초보적인 도매 시장, 금융 대출업, 노래방, 유흥업소 등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시장 확산은 `고난의 행군`시의 아사자를 점차 사라지게 하였다. 시장에 가서 조금만 움직이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집단 농장보다 개인의 텃밭 농사를 열심히 지었다. 상당수 주민이 하천이나 야산에서 개인 소유 `소토지`를 개간하고 작물을 재배하여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확대는 빈부의 격차를 증가시키는 `자본주의적 불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판 벼락부자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과거 배급 경제시의 국가나 당의 지시나 통제는 이제 먹혀들지 않게 된 것이다. 여기에 북한 당국의 고민이 있다.
북한 당국이 시장 참여를 제한하고 통제하고 있지만 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집단 농장이나 국가 기업소에서 일하던 주민들도 기회가 있으면 시장에서 장사하기를 원한다. 북한시장에서 휴대 전화는 필수품이 되었다. 시장정보가 장사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시장 상인들은 전화로 물가를 알아보고 고물 트럭이라도 마련하여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보급된 300만대의 전화기가 북한의 온갖 생활 정보의 교환 통로가 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끼리의 정보 교환은 사실상 국가통제가 불가능하다. 시장의 확산은 정보화 사회를 촉발하여 주민들의 당이나 국가에 대한 불만표출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이점도 북한 당국이 시장 확산을 우려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북한 시장의 확산은 사회주의적 통제경제가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에 접목하는 계기가 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혼한다는 역설이 북한 땅에도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걷어 들이는 임대료, 자릿세, 매장 사용료 등은 부족한 국가재정에 충당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낭비 경제`를 질타하면서도 자본주의적 과실을 따 먹는 형국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배경이 좋은 북한 주민은 장사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여기에 자본주의적 관료부패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 간부는 당당하게 먹고 보위부 간부는 보이지 않게 먹고, 안전부 간부는 안전하게 먹는다`는 유행어까지 북한 땅에 퍼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이를 막기 위해 시장의 통제와 이완 정책을 반복하고 있지만 시장화의 추세만큼은 꺾을 수 없다. 북한 땅에서 장마당과 노동당은 이제 불가분의 공존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북한의 경직된 체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장마당에서는 이미 개방과 개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