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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역동적인 대한민국

등록일 2016-11-29 02:01 게재일 2016-11-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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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지난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 약 150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를 벌였다. 이번 집회의 규모는 역대 최대라고 말한다. 한 달 전, JTBC에서 최순실씨의 태블릿 PC에 담긴 내용을 보도한 직후, 언론과 정치인들을 필두로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분노하기는 하였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운동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권도 국민들의 요구를 동력으로 삼아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 중이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종결될지는 필자는 솔직히 잘 모른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서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여전히 역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시민들이 사회를 그리고 역사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 또한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성향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온 추진력이었다.

이런 역동성에 대해서 필자가 만난 일본 사람들은 매우 부러워한다. 일본 사회에는 이런 대중적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에 매력을 느껴서 한국에 대해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와 같은 전공인 한 일본인 교수는 한국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가 한국인 부인을 만난 것은 광주에서였는데,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언론보도가 그를 광주로 오게 하였다고 한다. 그는 한국인의 정치적 에너지에 대해서 부러움을 표시하며, 일본인에게 그런 것이 부족함을 많이 속상해했다.

필자는 2013년 여름에 한 달 동안 일본의 도쿠 대학에 잠시 연구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필자를 초대했던 동양문화과의 학과장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 분은 정년퇴직이 가까운 분이셨는데, 일본의 전공투 세대(1960년대 일본학생운동 세대)라고 했다. 한 번은 필자가 공부하고 있는 연구실에 들러 `써니`라는 영화를 보라며 포터블 CD 플레이어를 건네주셨다. 이 영화는 여고시절의 추억을 1980년의 광주사태를 배경으로 묘사하고 있는 영화이다. 이 노교수에게 한국의 1980년대는 일종의 노스텔지어였던 것이다.

필자가 만난 한 심리학자는 일본인이나 독일인이 매우 순종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런 순종적인 성향이 일본이나 독일에서 파시즘이 발흥할 수 있었던 온상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의견이 논리적이고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순종적인 대중이란 결국 명령에 잘 순응하는 대중이라는 뜻이고, 이런 대중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위정자에 대한 복종이 대화나 토론보다 쉽게 일어날 것 같다.

누구든지 자신의 결정이나 처분에 상대가 고분고분 순응할 때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느끼고, 일이 잘 되고 있다고 느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정자가 권위적 일수록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서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위정자의 힘에 굴복하여 침묵하고 순종하기만 한다면, 그 사회는 민주적인 것과는 점점 멀어질 것은 분명하다. 민주적인 사회란 힘보다는 말-대화가 지배적인 사회이며, 그런 만큼 이성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언론 보도들을 보면, 이런 대화나 이성이라는 용어들과는 반대되는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통,` `무당,` `굿,` `꼭두각시` 등과 같은 용어들이 모두 그런 것이다. 이런 것들은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이 여러 가지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쌓아온, 그래서 상식적인 것이 된 판단 기준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이 한국사회가 좀 더 좋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헬조선이니 흙수저-금수저니 하는 용어들이 한 때의 유행어가 되었으면 한다. 거리에 나온 국민들이 단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만을 바라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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