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은 어디까지일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시작되자마자 불거진 논란의 화두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의 한계에 대해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 제4장 제1절에 규정돼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고, 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정권을 갖는다. 또 헌법 제7조는`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돼 있다. 무엇이 되고, 무엇은 안된다는 제한이 전혀 없다.
물론 권한대행은 선출권력이 아니다. 따라서 권력의 성격을 바꾸거나 새로운 국가이념을 설정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히 권한 밖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각부 장관의 권한으로 위임돼 있는 것들은 당연히 집행할 수 있다. 임기가 된 공공기관장 임명도 각부 장관의 제청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정당한 업무라고 봐야 한다.
외교정책도 국회가 비준권 등 제어할 수단이 있기 때문에 제한할 필요가 별로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한반도 사드 배치 등 이미 결정된 정책 역시 계속 추진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장관 교체가 필요한 개각이나 적극적인 통치행위 등은 권한대행의 권한을 넘어선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것이 옳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의견이다.
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마치 정권을 틀어쥔 것처럼 권한대행을 상대로 갑질을 하려는 인상을 주는 것 역시 온당치 않다.
야당은 황 권한대행이 대정부질문 출석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마치 탄핵가결을 기다린 사람처럼 대통령 행세부터 하고있다”(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새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얌전히 국회의 뜻을 받들라”(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황 총리님, 대통령 된 것 아니거든요”(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라는 비아냥섞인 논평을 내놨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야 3당이 먼저 대통령 대행의 권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황 권한대행 및 원내정당 대표들간 정치협상을 통해 확정지어야 한다”는 탈법적 제안까지 했다.
야권이 황 권한대행에 대해 심한 견제구를 던지는 데는 애초에 황 총리도 `박근혜의 남자`란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책임총리를 추천하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제안을 내놨을 때 야당이 거부한 데 따른 결과가 아닌가. 이제와서 황 권한대행 체제가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국정 발목잡기에 나서선 안 된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에 들어간 이상 야권도 이제 더이상 `촛불민심`에 기댈 생각을 접어야 한다. 경제와 안보가 모두 위기국면에 빠진 나라형편을 봐서라도 탄핵정국의 국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여야정협의체 발동에 적극 협조하는 게 옳다. 현 정부가 더 많은 헛발질을 해야 야권이 정권을 잡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협치를 통한 국정 안정이다. 황 권한대행이 야당에서 제의한 야 3당 대표와의 면담을 전격 수용키로 한 것은 이런 차원에서 환영할 만 하다. 20일과 21일 예정된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 요구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옳다.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국회와의 협치를 거부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전례를 만들며 국회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좋지 않나.
야권도 황 대행 체제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이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 이후 국정공백 상태에 빠져 경제는 침체되고,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 권한대행도 중립적인 국정 운영으로 불필요한 정쟁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도 친박 2선 후퇴를 포함한 체제정비를 서둘러 하루라도 빨리 여야정 협의체가 정상가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