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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의 생태학

등록일 2016-12-23 02:01 게재일 2016-12-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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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연말 송년회 자리에 함께 한 고위공무원의 건배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공무원 연수프로그램으로 미국의 국립자연공원에 갔을 때 들은 얘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미국의 국립공원에서는 산불도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낙뢰나 나무의 마찰 등 자연적인 원인으로 일어나는 산불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산불의 원인은 주로 사람에 의한 것이 80%이상을 차지한다는 게 산림청의 통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비해 산림이 잘 보호돼 있는 미국에서는 자연적인 원인으로 일어나는 산불이 적지 않고, 그런 산불은 생태적인 이유에서도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산림이 지나치게 우거진 지역에 산불이 나지 않으면 숲이 양지식물이 아니라 고사리 등 음지식물 위주로 재편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숲이 무성해진 뒤 산불이 나면 다시 양지식물이 새롭게 숲을 이루게 되고, 그것이 오히려 그 숲의 번성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속담으로 얘기하면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나 할까.

이런 에피소드를 듣고보니 요즘 이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는 어쩌면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숲에 일어난 산불과 같은 재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건국 이래 고수해온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로 고착되면서 얼마나 많은 권력형 비리를 일으켰나 되돌아 보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정부장의 총격으로 숨진 12·12사태 이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으로 근무할 때 공금 76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으며, 형 기환씨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탈 혐의로, 사촌형 순환씨는 골프장 허가를 미끼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비자금조성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는 1997년 기업인 6명으로부터 66억여 원을 받고 12억여 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또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았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는 2003년 기업체로부터 이권 청탁 명목으로 25억여 원과 정치자금 명목으로 22억여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고, 3남 홍걸씨는 2001년 체육복권 사업자 선정 로비와 공사수주 대가 등으로 36억9천여 만원을 받아 구속됐다. 전직 대통령과 친인척 비리는 끝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형 건평씨가 세종증권 매각비리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상득씨도 제3자뇌물수수혐의로 처벌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결혼도 않고, 친인척도 남녀 동생 각 1명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아 잘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랬던 것이 `친인척도 아닌 최순실이 권력 1순위`란 비아냥과 함께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대통령이란 권력의 그늘이 그만큼 크고, 음습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쨌든 `최순실 게이트`란 이름의 산불로 가장 큰 홍역을 앓고 있는 곳은 역시 여당인 새누리당일게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는 `보수가 분열로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 새누리당은 27일을 기점으로 친박계와 비박계 신당으로 갈라서면서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내주고, 새누리당은 원내 제2당, 새롭게 창당될 비박계 신당은 38석의 국민의당에 이어 원내 제4당으로 전락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대구·경북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여론이나 촛불민심과 궤를 달리하는 지역구 민심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라면 정치적 이익에 연연해선 안 된다. `최순실 게이트`란 큰 산불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음습한 권력지형을 싸그리 불태우고, 환한 햇살 아래 새 나무와 꽃이 아름다운 숲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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