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닭의 해라고 한다. 새해라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새해 복을 기원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다들 또 문자 메시지를 보내준다. 예전만 해도 새해가 되면 연하장이나 편지로 인사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닭 그림이 그려진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너무 쉽고 간단한 것 같기도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충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필자 자신, 그리고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한 해 동안의 변화라면, 자기 자신에게 생길 변화에 대해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나라 걱정을 하게 된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당해 직무가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궁금하다. 헌재가 박대통령 탄핵 인용을 하든 기각을 하든 그에 대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조기 대통령 선거이든 12월 대통령 선거이든 대통령도 새로 뽑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게 한다.
솔직히 필자의 삶은 큰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나라 걱정`이 필자의 일 순위 스트레스 유발 요인이다. 한 친구는 필자의 신년 메시지에 `모두 착잡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네요. 모두 힘내세요`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또 한 친구도 `새해에는 나라도 우리도 모두 건강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라는 문자 메시지를 필자에게 보내왔다. 모두 새해 벽두부터 나라 걱정인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한 반동에서인지 필자의 올해 목표는 가족과 좀 더 좋은 관계 맺기와 올해도 즐겁게 살기이다. 이것 말고도 여러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는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20여 년 전, 필자가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대학생들은 여전히 나라 걱정으로 투쟁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행복`이라는 감정은 뭔가 금기 같은 것이었다. 나라가 이렇게 문제인데 이것을 걱정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싸워야지, 행복감을 가지면 안 된다는 암묵적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처럼 주객전도인 것도 없다. 우리가 나라 걱정을 하는 것은 정의가 실현되고 나라가 상식대로 운영되어 국민들 다수의 행복감을 증진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행복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비슷하게 정치지도자들도 행복과 삶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행복을 맛본 적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줄 것 같지가 않다. 필자의 주위에는 사회적으로 매우 성공하고 존경받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만나면 늘 불평불만이 심하다. 이런 것이 너무 안타까워 필자는 좀 마음이 즐거울 수 있도록 노력하시라고 하면, 불행한데 억지로 행복한 척하기 싫다고 말한다. 이처럼 불행한 사람 옆에 있으면 주위사람도 자꾸 불행해진다.
외국 언론들은 촛불집회에 대해 보도하면서, 시민들의 모습이 록 페스티벌에 온 것처럼 즐겁고 행복해 보이며,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놀랍다고 했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나라 걱정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진정 스스로가 행복한 지도자여서 국민들에게도 자신의 행복감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나와 서로 상승효과를 냈으면 좋겠다.
이렇게 된다면 필자의 나라걱정도 많이 줄고, 스트레스도 많이 줄 것 같다. 필자는 지금 여기서 매일 기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것이 필자의 새해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