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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해를 사는 법

등록일 2017-01-04 02:01 게재일 2017-01-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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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새해가 밝았다. 조류 인플루엔자로 가금류 3천만 마리가 생매장됐는데 `붉은 닭의 해`다. 이건 무슨 은유인가. 달력도 참 짓궂다. 하루 빨리 방역에 성공해서 더 이상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와 유통업계 종사자들이 슬픔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들이 힘을 합쳐 도와야 한다.

부화하려는 병아리가 안에서 두드리면 그 소리를 들은 어미 닭이 밖에서 부리로 쪼아 알을 함께 깨뜨리는 것을 줄탁동시라고 한다. 조류 인플루엔자를 막기 위해 농민들이 몸부림쳤지만 방역당국이 제대로 된 대책을 내지 못했다. 줄탁에 실패한 것이다.

천만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줄` 했더니 바위보다 견고하던 커다란 알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검과 헌재 탄핵심판이 어떻게 `탁` 할 것인지 궁금하다.

온갖 수난과 고초를 겪고 있는 마당에 닭의 해라니 닭 입장에서도 운명의 장난 같을 것이다. 십이간지 다음 순서인 개한테 한번 바꾸자고 할 수도 없고 이제 와서 오리나 꿩을 대타로 내세울 수도 없고 정말 곤란하게 됐다. 2017년의 마스코트로서 여기저기 얼굴 내밀어야 하는데 고병원성 바이러스 덩어리 취급 받고 있으니 큰일이다. 한쪽에서는 매일 죽어나가고, 한쪽에서는 새해 희망을 노래해야 하는 이 지독한 딜레마를 어쩌면 좋을까. 그래도 새벽닭은 운다. 동족의 주검 위에서 힘차게 울어 아침을 끌고 온다. 좀 모자란 행동을 하는 사람을 흔히 `닭대가리`라고 부르는데, 닭은 조류 중에서 특히 지능이 낮아 기억력이 형편없다고 한다.

그걸 좋게 포장해 `나쁜 일을 잘 잊는 낙천성`이라고 해두자.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아침을 여는 단순한 용기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때다.

닭의 해니까 닭처럼 살아야겠다. 닭은 생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무척 강한 짐승이다. 못 먹는 게 없고, 어떤 상대와도 당당히 싸우며, 멋진 벼슬과 오색 깃털로 자신을 치장한다. 시골집에서 방목해 키우는 닭들에게 유해어종인 배스를 던져준 적 있는데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네나 독사를 먹고 자라 털이 다 빠지도록 그 맹독을 이겨낸 닭은 `약닭`으로 불린다. 닭은 솔개나 매하고도 싸운다. 사람에게 쫓기다 궁지에 몰리면 푸드덕 날아올라 얼굴을 쪼기도 한다. 싸움닭들이 혈투를 벌이는 걸 보고 있노라면 메이웨더와 파퀴아오 경기는 격투도 아니다. 투지와 근성이 남다르다. 날 수 없지만 끊임없이 날개 친다. 날지 못하는 새의 몸부림만큼 처절하게 아름다운 것은 없다. 새벽마다 목청껏 울고, 끊임없이 알을 낳는다. 닭만큼 성실한 짐승도 없다. 멍청할 정도의 낙천성과 절대 기 죽지 않는 용기, 왕성한 활동력, 성실함, 안 되는 줄 알면서 계속 시도하는 도전 정신을 나는 닭에게서 배우고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닭에 깃든 사람의 마음, `닭`이라는 상징이 가리키는 따뜻한 정서를 항상 기억하고 싶다. 예컨대 씨암탉 잡는 장모의 정성 같은 것이다.

앓아누웠을 때 연인이 끓여준 삼계죽 한 그릇에는 얼마나 애틋한 마음이 들어있던가. 동네 치킨집에 모여 술 마시며 신세 한탄하다 하나 남은 닭다리를 끝내 남겨두던 내 가난한 친구들이 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기쁠 때나 슬플 때, 아플 때나 안 아파도 기운 낼 일 있을 때 사시사철 나는 닭을 먹고 또 먹었다. 서른네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닭고기다.

유년의 겨울밤, 술과 노동과 사람에 취해 눈길 위를 비틀거리는 아버지 언 손에 비닐봉지 들려 있다. 달력종이로 감싼 통닭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비닐에 물방울로 맺힌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 노릇노릇한 냄새가 아버지보다 먼저 현관을 열고 방에 든다. 통닭이 식을까 봐 잠바 속에 넣고 왔는지 아버지 옷에서 고소한 기름내가 난다.

어린 아들 맛있게 먹으라고 통닭을 품안에 넣는 그 마음으로 한 해를 살고 싶다.

마음의 온기를 꺼뜨리지 않고 가족과 이웃, 소외된 이들, 힘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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