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휴게소에서 아침을 맞았다. 올해 가장 부드러운 햇살이 나를 훑었다. 재첩국을 먹고 하동, 구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유홍준 교수가 말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9번 국도를 몇 해 전에 지났지만 캄캄한 밤이라 아무것도 못 봤다. 달빛 베일에 싸여 실루엣만 보이던 그 길을 향해 달리자 얼굴 본 적 없는 신부에게 가는 옛 신랑처럼 가슴이 쿵쾅댔다.
섬진강 모래톱은 체에 거른 보릿가루처럼 색감이 곱다. 손으로 느끼는 질감과 눈으로 느끼는 질감은 따로 있다. 설악산의 깎아지른 바위들을 볼 때 내 눈은 무엇엔가 할퀸 듯 껄끄럽고, 변산 격포의 해넘이를 볼 때엔 화로에서 갓 꺼낸 감자에 닿은 것처럼 화끈거리는 것이다. 섬진강변을 보는 눈이 강아지 털에 감싸이는 듯 했다.
강줄기가 채찍이 되어 바람의 등허리를 때렸다. 따뜻한 공기 속을 봄바람이 말처럼 달렸다. 서울은 아직 이르지만 남녘은 벚꽃 천국, 꽃잎의 대설주의보다. 센 바람에 꽃잎들이 흩날리며 눈물겹게 아름답다. 화개장터와 쌍계사에 가는 차들로 19번 국도는 주차장이 돼 있었다. 꽉 막힌 도로가 반가울 줄이야. 앞에서부터 차들이 빠져나가 점점 속도가 나는 게 싫었다. 열 시간이고 이대로 멈춰 서서 꽃비에 젖고만 싶었다.
꽃구경 실컷 하고 벚꽃길에서 나왔다. 검증할 방법은 없지만 마음이 깨끗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뭉클하다. 그걸 자연에서 발견할 때는 감동이 더 크다. 꽃잎의 화사함이 마음 속 고민과 어두운 생각들을 몰아낸 모양이다. 감정의 정화작용이므로, 꽃잎은 내게 카타르시스다.
화개장터에 갔다. 깨 볶는 소리, 뻥튀기 소리, 뽕짝, 엿장수 음담패설, 참기름 냄새, 풀빵 냄새, 황기, 당귀, 감초, 갈근, 칡 냄새, 돼지머리 삶는 냄새, 명란젓, 창난젓, 밴댕이젓, 곤쟁이젓 냄새까지. 사라져 가는 것들, 급변하는 세상의 한 구석에서 발버둥 치며 겨우 살아있는 오래되고 촌스러운 것들을 보고 있으면 애잔해진다. 북을 때리며 우스꽝스럽게 춤추는 엿장수가 쓸쓸해 보였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던 신경림의 시 `농무` 한 구절을 떠올렸다.
천막 주점에 앉아 벚굴과 은어튀김을 먹었다. 막걸리도 마셨다. 동행한 친구가 마침 생일이라 재첩비빔밥 가운데다 은어튀김을 초처럼 꽂아놓고 축하했다. 나는 꽃잎 하나를 주워와 친구의 막걸리 사발에 띄워주었다. “어느 지나간 날에 오늘이 생각날까…” 귀에 익숙한 이문세의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문득 꽃잎과 생일, 살아있음과 소멸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살면서 죽고 죽으면서 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소멸 중이다. 그게 그렇게 슬프고 안타까울 수 없는 나는 자꾸만 현존하는 소멸, 소멸하는 현존을 향해 마음이 기울어진다. 생일은 기쁜 날이지만, 거듭될수록 우리를 죽음에 가깝게 한다. 생일은 곧 소멸의 진행을 확인하는 날이다. 입술을 내밀어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도 소멸이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금세 과거가 되어버린다. 꽃잎도 그러하고, 엿장수도 그러하고, 내 앞의 친구도 그러하다. 꽃도 삶도 사랑도 진다. 영원한 것은 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뿐이다. 시간의 흐름이 우리를 끊임없이 흩어간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냥 오늘을 사는 것밖에. 소멸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든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꽃은 지기에 아름답고, 만남은 이별이 예정돼 있으므로 소중하다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지만, 나는 다시 꽃비를 맞기로 하고 주점에서 나왔다.
화개장터를 빠져나와 쌍계사 가는 길도 벚꽃이 지천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벚꽃잎들 사이로 햇살이 눈부셨다. 바람이 불자 꽃잎이 머리 위로 흩날렸다. 나는 이 세상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