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 뭘까? 이상한 말, 이상한 눈빛, 이상한 행동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면, 남자는 남자다워지고. 여자는 여자다워진다. 우리 집 첫째 딸이 중학교 3학년이다. 아직 중학생 나이인데, 친구들이랑 주말에 놀러 나간다고 차려 입고 나오는 것을 보면, 여대생 같다. 우리 딸의 키가 175cm가 넘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얼굴에 어른 화장을 하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매번 나랑, 딸아이랑 언쟁이 심하다. 아빠인 나의 눈에는 아직 여중생이 여대생처럼 꾸미고 나오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딸에게 매번 잔소리다. 하지만, 우리 딸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그냥 고리타분한 아빠의 지나가는 말일 뿐이다. 아빠는 딸을 이길 수 없다. 100전 100패다. 하지만, 여중생의 여대생 꾸밈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진실이다.
영화 `굿 윌 헌팅`에 보면, 지금은 작고한 로빈 윌리엄스가 숀 맥과이어 교수로 나온다. 숀 맥과이어 교수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이가 있었는데, 상처입고 방황하는 수학 천재 윌이 있다. 숀은 윌의 마음을 열기 위해 애쓴다. 윌은 `자책, 분노, 열등감`에 시달려 자신을 공격한다. 자기 자신이 정말 싫은 것이다. 그런 윌에게 숀 교수가 말한다.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이고 전설적인 대사다.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숀이 들려주고 싶은 말이고, 윌이 듣고 싶은 말이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윌이 스스로를 향한 정죄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윌은 숀의 품에 안겨 운다. 윌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회복되는 순간이다.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다. 해방은 자유이며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에덴 동산으로의 회복이다. 기독교 철학의 중심은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이다.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신앙인의 모습을 견지하게 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라. 성령 충만함을 받으니 베드로는 가장 베드로다워졌다. 요한은 뜨거운 사랑이 살아났으며 사도 바울은 복음의 인파이터 정신이 흘렀다.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지 않고 참다운 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성령 충만이며 자연스러움의 회복이다.
억지로 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없다. 하지만, 자연스러움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 가운데 자연스러움을 회복할 수 있을까? 2003년 12월 예멘의 침례교 자선 병원에 테러 공격이 있었다. 22년 동안 엄청난 헌신과 사랑으로 예멘을 섬긴 선교사 말사 메이어가 있다. 그의 무한한 희생과 폭발적인 사랑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예멘에도 충격을 주고있었다. 그런데 그런 착한 영향력을 줬던 사람에게 테러 공격이 가해졌던 것이다. 테러 공격으로 인해 3명의 선교사가 죽고, 1명이 중상 입었다. 말사 메이어 선교사도 그 테러 공격으로 순교했다. 테러리스트 알 카밀에게 물었다. 헌신과 사랑의 선교사에게 테러를 가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알 카밀은 “나도 안다. 그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을! 심지어 나의 어머니도 그의 보살핌으로 살아나게 됐었다. 내가 그 선교사를 죽인 이유는 그 선교사를 죽이지 않고 그냥 놔두면, 그의 사랑 때문에 모든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선교사 말사 메이어 장례식에 예멘 사람 4만명이 왔다.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 주기도문이 낭송됐고, 찬양곡 `He is the Lord`가 합창됐다. 사랑의 마음이 중심이 된 자연스러움, 때론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을 수는 없다. 자연스러운 사람으로 내 삶의 끝날까지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