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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은혜

등록일 2017-04-25 02:01 게재일 2017-04-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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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의수<br /><br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

다음달 5월에는 어린이 날, 어버이 날이 있다. 8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몇 주 전에 `어머니 은혜` 동요를 들으며 눈물에 젖어 있었다.

네 아이를 기른 경험이 있기에, 낳고 기르는 부모의 은혜를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음을 내 아내와 나는 실감하며 그래서 자녀를 손수 기른 모든 부모들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동요의 2절을 들으며 깊은 묵상에 잠겼다.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게 또 하나 있지.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

“사람 되라”고? 어머니가 사람을 낳았지 짐승을 낳았나?

맞았어.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이지. 그래서 “사람 되라”이르시는구나.

1986년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남긴 유서가 내 머릿 속에 떠올랐다.

아직 미숙한 소녀의 글이지만, “사람 되라”이르시는 어머니의 상과 비교된다.

어머니들과 부모들이 자식들의 장래를 위한다고 하겠지만, 실은 “사람 되라”이르지 않고 오히려 `개인 없는 개인이기주의자`가 되라고 오도하고 있다.

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들에게 “사람 되라”일러야 하는지 소녀의 글을 지면의 한계상 일부를 중략해서 생각해 본다.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는데 어쩔 땐 나보고 혼자 다니라고까지 하면서 혼내시기도 했지.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그분이 날 15년동안 키워준 엄마라니 너무나 모순이다.”

“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 하나 받아 고개들고 다니려하는 공부 천만번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렇게 해놓고는 자기이익만을 위해 거들먹거리면서 나라를 위해 눈꼽만치도 힘쓰지도 않으면서 외국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하는 공부만 해서 행복한건 아니지 않는가?”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지 않는가? 무엇이든 이 사회에 봉사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면 보람있고 행복한 것이잖아. 꼭 돈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잖아.”

“매일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 들어가는 내 심정을 생각해 봤어? 난 로보트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야.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가치관까지 밟혀버릴 때는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떨어.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아, 차라리 미워지면 좋으련만, 난 악의 구렁텅이로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엄마를 구해야만 해. 난 성적이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전교 ○등, 넌 떨어지면 안된다. 선생님들이 널 본다. 수업시간에 넌 항상 가만히 있어야 한다. 넌 공부 잘하는 학생이니까 장난도 치지마라. 다음 번에 ○등해라. 왜 떨어졌어? 공부해! 엄마 소원 성취 좀 해줘. 서울대학교 들어간 딸 좀 가져보자. 그렇게 한가하게 음악 들을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공부해` 매일 엄마가 했던 말이야.”

“엄마가 뭔데 내 친구 편지를 읽는거야. 난 사람도 아닌가? 그리고 돈? 그게 뭐야. 그게 뭔데 왜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거야. 난 눈이 오면 마음껏 놀고 싶고, 난 딱딱한 공해보다는 자연이 좋아. 하긴 지금 눈이 와도 못나가는 걸. 자꾸 한탄만 했지, 그렇지? 졸업하면 나는 아예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갇혀서 죽도록 공부만 해야 할거야.”

“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는 생각치 않아. 슬픔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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