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시대를 떠받친 정치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황희(黃喜)에 대한 후세들의 평가는 `최상의 청백리(淸白吏)`에서 `최악의 탐관오리`에 이르기까지 극단을 오간다. 일국의 정승이 멍석을 깔고 살면서 보리밥과 된장·풋고추밖에 없는 밥상을 받고 살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세종실록에 `여러 해 동안 매관매직하고 형옥을 팔았다`거나 살인한 유부녀를 숨겨주면서 간통을 저지른 너저분한 인사였다는 기록을 함께 남겼다
황희는 세종 8년(1426년) 우의정에 제수된 이래 무려 24년 동안 정승 자리에 있었고, 1432년부터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을 지냈다. 세종의 부왕인 태종 이방원이 황희에게 “내 아들을 부탁한다”고 당부했기 때문에 세종대왕도 그를 가벼이 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황희가 정세판단 능력이 기민하고 업무수행능력이 탁월했으며 무엇보다도 주군의 심리를 잘 간파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초기 인사문제로 덜컹거리고 있다. 발탁한 인재들이 뜻밖의 도덕성 시비에 걸리면서 스텝이 꼬이고 있는 모양새다.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첫 낙마기록을 남기긴 했지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강경화 외무부장관까지 임명 강행 수순을 밟았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며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높은 지지율에 기대 야당의 반대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대변인의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데 참고하는 과정으로 인사청문회를 이해하고 있다”는 브리핑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참고용`이라고는 말한 정권이 또 있었던 지를 되짚어보게 한다.
일련의 발언들은 높은 지지율에 취한 청와대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시시콜콜 어깃장을 놓는 야당 행태는 온당치 못하다는 세평을 업고 내달리고자 하는 심사가 읽힌다. 문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를 묵살하고 장관 임명을 밀어붙이는 것은 절박감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국민의 뜻 존중`이 `국회 무시`와 병치될 수 없는 모순은 어떻게 해결할 참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우리 정치풍토에서 야당의 고질적 `발목잡기` 근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민들은 현재의 정부여당이 불과 몇 달 전까지 어떤 야당이었는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민주당의 야당노릇은 작금의 야당 행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거칠었었다. 이는 지난날 자신들의 언행에 대한 성찰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빼도 박도 못할 사유다.
취임 이후 지속되던 문 대통령의 광폭 소통 행보가 주춤거리고 있다. 장관 인선 발표도 홍보수석에게 미루고 있고, 비서관회의 모두발언 형식으로 정치현안에 대한 견해를 일방적으로 피력해 뉴스를 만드는 전 정권의 불통행태도 다시 나타났다. 스스로 제시한 5대원칙에 발목이 잡혀 조각 문제가 삐걱거리는 데 대한 진솔한 자기고백 따위의 반전책은 애써 생략하고 있다.
야당을 비롯한 비판자들은 문 대통령의 모습에서 `쇼통(Show通)의 그림자`를 느낀다고 말한다. 대중의 인기를 높이는데 유효한 보여주기 식 소통 이벤트를 지속하면서, 돌아앉아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듯한 이미지가 슬슬 어른거린다. 이 불길한 `도로 불통(不通)`의 먹구름을 걷어낼 묘책을 찾아내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서 신실(信實)하게 반성하고 해명하고 다짐하는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
오늘날 국가운영의 동량(棟樑)을 구하는 일은 `네모난 삼각형`을 찾아내야 하는 어불성설의 난제와 같다. 개똥밭 군중 속에서 오물 한 점 묻지 않은 `별종`을 찾아내는 일만큼 지난하다. 제아무리 위대한 세종대왕이라고 해도 오늘날 같으면 황희처럼 불가사의한 인재를 찾아 국정을 맡기기란 어림없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낮은 자세로 초심을 지켜가는 권력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진실을 망각하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