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등 야 3당은 반대 목소리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증세관련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으로 초대기업·고소득자를 중심으로 증세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새 정부가 청사진으로 제시한 `100대 국정과제`를 실행하려면 5년간 178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위한 재원 마련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야당 등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카드로 정부가 사실상 증세추진을 위한 실질적인 행보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체로 방향은 잡히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전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제안한 `핀셋증세` 방안을 지지하고 나섰다.
추 대표는 소득 2천억원이 초과되는 `초대기업`에 대해서는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금액)을 신설해 법인세를 현행 22%에서 25%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국세청 참고자료에 따르면 추 대표가 증세 대상으로 꼽은 초대기업은 2015년 기준 126곳으로 법인세 25%가 현실화 될 경우 2조3천900억원의 추가 세수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재계 1위의 삼성전자는 기존 7조9천875억원(2016년 기준)에서 9조768억원으로 1조893억원의 세금을 더 부담하게 된다.
또 소득세 최고 세율도 연 소득 5억원 초과 고소득자에 대해 현행 40%에서 42%로 인상하자고 했다.
개인 증세 대상인 5억 원 초과 고소득자는 2015년 기준 근로소득자 6천680명을 포함, 총 1만9천571명으로 소득세율 42%가 현실화되면 연간 4천900억원의 세수 추가확보가 가능하다.
증세론의 나팔을 처음 불기 시작한 이는 정권실세인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다.
김 장관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국민들에게 우리 경제의 현실을 정확히 알리고, 더 나은 복지 등을 하려면 형편이 되는 쪽에서 소득세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전까지 법인세, 소득세 등 명목세율 인상 없이 추가 재원조달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발표는 증세 없는 재원조달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여당 수뇌부에서 제안한 내용을 청와대가 수용하는 형식을 취한 것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증세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부총리는 장관 후보자시절부터 꾸준히 “법인세와 소득세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라며 “올해 명목세율 인상은 없다”고 강조해왔다.
이처럼 정부와 여당이 마치 짜여진 듯한 각본을 통해 증세정책을 공식화한 것과 관련,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현재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 필요한 예산 178조원을 증세 없이 조달한다고 했는데 불과 하루 만에 증세 없이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무리한 날림공약임을 정부가 스스로 자인했다”고 비판했다.
대선 당시 증세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증세는 최후의 수단”, “증세비판을 피하기 위해 일부를 한정해 증세한다면 재원조달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증세 정책을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한편, 정부는 11조300억원 규모의 추경 중 70%를 추석 전까지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추경 통과가 예상보다 늦어 당초 예상했던 성장률 제고 효과 달성이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대한 집행을 신속하게 한다는 것이다.
23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전날 국회를 통과한 11조3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공무원 2천575명 증원 등 일자리 마련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으로 투입된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