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이제 가을로 들어선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봄과 여름에 땀 흘려 씨 뿌리고 가꿔서 이제 결실을 거둬들이는 시기가 다가온다. 인생도 그러하다. 어려서 씨 뿌리고, 청년시기에 가꾸고, 장년에 결실을 거둬들인다.
노년에는 훈훈한 방에서 반려자와 인생을 회고하고 자식들과 함께 즐기며, 친구들과 세상 앞날을 이야기한다.
인생에 예외는 항상 있으나 `심은대로 거둔다`, `사필귀정`도 그 뜻이리라.
사업이나 프로젝트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우리 경제는 과거에 경제부흥을 위해 흘린 피땀의 결실이고, 지금도 흐르는 땀의 열매이다. 이제 우리는 애써 이룩한 경제발전의 선진 궤도를 한 단계씩 높이고 새로운 인지기술에 기초한 4차 산업혁명 경쟁에 피땀을 흘리는 선구적인 혁신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구태의연한 허례허식으로 귀한 시간과 애써 축적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2010년 한국에 돌아와 `글로벌`이라는 문구가 만발함을 보고, 나는 `맞아. 그래야지`하며 기뻐했다. 다수의 도시들이 `글로벌`을 홍보했고, 많은 정책들도 `글로벌`을 중심 주제로 했다. 2012~13년에 `글로벌`이 `창조`로 바뀌어 `창조 도시`가 우후죽순 같이 나타났고 한국 경제는`창조 경제`로 탈바꿈됐다. 2013년 어느 신문 기사를 잊을 수 없다. 어느 정부 부서의 장이 `창조 경제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더니 기존안에`창조` 문구만 덧붙여 가져왔다고 했다.
2014~15년에는 `혁신, 융합`으로 구호가 바뀌었다. 교육계와 연구 단체들은 `혁신교육, 융합연구`의 깃발을 들고 요란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개최된 `2016 다보스 세계회의`와 이세돌이 인공지능과 벌인 바둑경기 참패를 계기로 2016~17년에는 한국의 정책과 관심이 하루 사이에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바뀌었다.
짧은 7년 간 글로벌, 창조, 혁신과 융합,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등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거대한 정책 구호와 관심이 급회전하였다.
그동안의 구호들과 관심사들이 과연 얼마나 알차고 결실을 얻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지면상 다음으로 미루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최근 사회 변혁의 결실을 맺은 예들을 참고하며 한국의 정책구호와 관심사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첫째, 우리는 아직도 선진세력을 뒤쫓고 있다. 남다른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신장해야 한다. 과거의 빠른 모방과 달리 이제는 창조적, 혁신적 산업혁명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과제요 관권이다. 소비자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것을 창안해야 한다. 과거에는 뒤에서 선진 그룹을 추격했지만 이제는 남보다 앞장서 달려야 한다.
둘째, 개개인들이 솔선하여 행동하는 사명감이 부족하다. 각계의 `지도자들`을 선두로 모든 개인들이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솔선하여 행동해야 한다. 결실을 맺는 혁신가들은 독특한 사명감으로 무장하여 `불가능`에 도전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우주에 자국을 남기고자 하였고, 마크 저커버그는 세계인들을 연결시키고자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정주영, 박태준 같은 한국의 혁신 기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국가 사랑, 국민 복지를 사명으로 삼고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들의 공익에 기초한 정신과 열정이 가치있는 결실들을 가져왔다.
셋째, 우리는 너무도 요란하게 전시효과적으로 시작하고, 결과에 대해선 조용하다. 용두사미 격이다. 성과와 결실을 제시해야 한다. 성공적인 혁신가들은 소리없이 시작하여 피땀 흘려 자력으로 협업자들과 애쓴 후, 그 결실을 세상에 소개한다. 그들은 사람과 결실에 집중한다.
대조적으로 우리는 종종 정부공모에 응해 받은 돈으로 `삐까번쩍` 공간부터 차리고, 개회식 열고, 정부 관료들을 줄줄이 초대한다. 우리는 사람과 결실보다 내용도 없이 돈과 물질공간을 먼저 내세우고 너무도 윗 사람에게 엎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