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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를 넘어 망국으로 가는 공기업 채용비리

등록일 2017-09-15 20:45 게재일 2017-09-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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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전통사회에서의 과거시험은 국가에는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 장치이며 응시자에게는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 관직으로 진출하는 통로이다. 그러나 권력이 비정상적일 때는 과거 시험의 공정성이 무너짐으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변질돼 백성의 신뢰를 잃게 되며, 공적 제도가 아닌 개인의 사유물로 전락돼 세력을 형성하는 데에 이용되고 온갖 부정부패의 중심이 됐다.

윤선도(1587~1671)의 `고산유고`를 보면, 그는 몇 해 전 사마시를 통과하고 관직 진출을 꿈꾸는 이른바 사회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그의 나이 30세에 인생의 일대 전환기를 맞는 `병진소`를 올렸다. 이 상소로 인해 윤선도는 37세까지 8년간이나 죄인으로 귀양살이를 했다. 이 시기는 광해군 8년으로 이이첨의 권력이 극에 달했을 때인데, 이이첨이 모든 요직에 자기 사람을 심어 교묘하고 치밀하게 자신의 뜻대로 국정을 움직이고 나라를 그르친 실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폭로했기 때문이다. 이 상소는 `광해군일기`에도 실려 있으나, `유중불하`의 처분을 받았다. 유중불하란 상소의 내용이 임금의 뜻에 맞지 않아 상소를 궁중에 두고 관계 기관에 회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이 상소에서 과거시험이 공정하지 못하고 부정이 일상화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많은 비중을 뒀다. 자표상응(응시자끼리 커닝 페이퍼를 돌려보는 행위), 시권위표(시험지에 표시하여 특혜를 받는 행위), 장옥통두(시험 감독관과 내통하는 행위) 등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오직 합격에만 목표를 두는 현실을 폭로했던 것이다. 당시 권력자 이이첨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선 네 아들이 유출된 문제를 입수하거나 남이 지은 글을 베껴서 제출하는 부정한 방법으로 모두 과거에 급제했다. 이러한 부정은 누구나 금방 알아차리고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기에, 권한을 가진 사람이 아무리 어려워도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대학입시부터 각종 취업시험에 이르기까지 시험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사회는 발전했지만 그 안에 퍼져있는 온갖 부정과 비리는 400년 전 고산이 개탄한 시대보다 더 참담해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개천에서는 용이 아예 날 수 없다`는 사회구조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형태를 띤 정치구조에서 대선을 비롯해 각종 선거를 치르면서 나타나는 소위 선거공신들이나 측근들의 구제를 위한 여러 행태 중 부정청탁의 채용비리는 강원랜드, 석유·전력공사 등 모든 공공 기관에서 그 도를 넘고 있다.

공기관은 젊은이들에게는 `꿈의 직장`으로 통한다. 이러한 공기관의 취업이 권력자나 기득권층의 개입으로 그들의 인친척이나 주변사람들이 연줄을 활용해 간단히 입사하는 현실이다 보니 이런 패악적인 채용비리로 이들이 자리를 차지한 탓에 실력 있는 `흙수저` 자제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낙방의 고배를 마셨으며 지금도 직장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밝혀지고 있는 어떤 공기업은 심지어 합격자 518명 중 493명이 배경(빽)이 있었다. 즉 부정청탁, 세습채용, 서류위조 등 `반칙세계`의 축소판인 것이다. `돈도 실력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한 정유라의 인터넷 글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으나 사실 이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나타낸 말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의 양극화가 심각해지다보니 자신의 노력이나 실력보다는 삶속에 배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겪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이나 실력보다 해당되지 않는 다른 그 무엇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회는 비극이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사회의 비리가 근절되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박탈감과 좌절감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공정한 일자리 경쟁은 모두 공정한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한국사회 최후의 안전판이다. 검찰은 채용청탁을 한 사람이나 받아준 사람을 모두 파헤쳐 엄벌해야 이 사회가 공정하게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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