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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날리기

등록일 2018-04-13 22:01 게재일 2018-04-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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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기 철 <br />

동양공전 앞 사거리, 라면 박스로 지은 집 한 채, 사방으로 갈라진 길들을 몽느 채 다리 밑에 오롯이 앉아 있다. 삼양라면, 농심라면, 이름표들을 달고 라면 박스로 만든 집 속의 사연이 적혀있다. <바다의 냄새가 담뿍 담긴> <들꽃이 이야기하는> <한 끼의 그리움을> 곱게 포장한 라면 박스로 만든 집 속에는 세상을 포장한 벙어리 아저씨가 살고 있다. 날마다 라면 박스가 포장하는 꿈들을 주우며 아저씨는 한밤이면 라면발로 몸을 칭칭 동여매어 라면으로 만든 꿈을 꾼다. 때묻은 길거리의 이야기와 골목길의 겨울 담벼락 모퉁이 파란 풀잎들을 박스에 담은 채, 겨울 눈 오는 밤, 아저씨는 알아들을 수 없는, 별들이 잠자는 라면 박스 속 이야기를 리어카에 싣고 하루 종일 사람의 집들 사이를 누빈다.

시인의 눈에 비친 집 한 채는 누구나 꿈꾸는 화려하고 아름답고 건사한 집이 아니다. 각종 상표의 라면 박스로 지어가는 집이다. 폐라면 박스를 모아서 삶을 영위하는 영세한 어느 아저씨가 지어가는 미완의 행복 집인 것이다. 거기에는 바다의 냄새가 담겨있고 들꽃의 얘기와 그리움이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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