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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격렬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등록일 2018-09-21 19:31 게재일 2018-09-2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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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할 때도 쉴 때도 시간은 너무 빨리 간다. 일을 할 때는 기한 내에 마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고, 쉴 때는 이 쉬는 시간이 곧 바닥이 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간다. 한 때 나에게도 시간이 더디게 흐를 때도 있었다.
▲ 일을 할 때도 쉴 때도 시간은 너무 빨리 간다. 일을 할 때는 기한 내에 마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고, 쉴 때는 이 쉬는 시간이 곧 바닥이 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간다. 한 때 나에게도 시간이 더디게 흐를 때도 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 대사는 2015년에 등장한 한 카드회사의 광고문구였다. 그 뒤 이 대사는 수없이 많은 ‘짤방’들을 양산해내며 변질되기 시작했다. 뒹굴거리며 주말을 보내는 직장인들, 취업을 하지 못해 집에서 놀고 있는 ‘취준생’들의 속마음이 되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것,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격렬하게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마음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격무에 시달렸는지를 대변한다. 또 그들이 다가올 내일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이유는 내일을 맞아야 한다는 공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공포스러운 내일을 또 다시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전략이기도 할 것이다.

내일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쉬어야 한다.

추석은 명절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연휴다. 연달아 휴일이 있는 기간이다. 그 기간이 무려 4일이나 된다. 분명 이 기간을 더 격렬하게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부디 욕하지 말라. 오히려 그들의 힘든 삶과 그들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에 공감해 달라.

지난 명절즈음 나는 이런 생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여행. 그래서 여행지를 중국의 싼야라는 곳으로 정했다. 왜냐하면 우선 가격이 합리적이었다. 닷새 동안 모든 스포츠 시설 이용과 식사가 무료였고, 심지어 음료나 술도 공짜였다. 또한 명절 한 주 전이어서 사람이 없었다. 물론 휴양지에 사람이 북적대는 맛이 있어야 하긴 하지만,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었으므로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나는 그곳에서,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수영장 벤치에 누워 칵테일을 마시며 하루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 당시의 기록을 여기에 남긴다.

△떠나기 전

여름은 무더웠다. 일은 많았다. 많아도 많아도 지나치게 많았다.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밤 10시에 퇴근을 했고, 집 근처 카페에서 잔업을 마무리했다. 이르면 새벽 2시 늦으면 4시. 일이 끝나면 목욕탕으로 갔다. 따뜻한 물이 좋았다. 찬물도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4시간을 자고 다시 아침 10시까지 출근을 했다. 이런 반복된 일상을 거의 40일 동안이나 유지했다.

하여 나는 오늘 여행을 떠난다,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닷새를 보낼 생각이다. 정말 아무것도 안할 수 있을까? 이 여행을 통해서 나는 알게 될 것이다. 나에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나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들, 그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일 것이다. 그 닷새를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벌써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란 결국 돈을 버는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이 될 것이 틀림없다.

△첫째 날 밤

새벽 1시. 비행기는 미끄러지듯 공항에 착륙한다. 사람들이 내린다. 나를 리조트로 데리고 갈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로밍을 하지 않아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밖에는 수많은 한국인 가이드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은 익숙한 장면인지 나의 난감함을 눈치채고 리조트에 연락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무사히 리조트에 도착한다.

숙소를 안내받았다. 방은 내가 지냈던 어떤 호텔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다. 역시 대륙의 호텔답다. 발코니에는 욕조도 있다. 나는 짐도 풀기 전에 우선 욕조에 물을 받는다. 짐을 푼다. 나는 이곳에서 5일을 보낼 것이다. 침대에도 누워본다. 아무 것도 안할 것이라고 다시 다짐한다.

△둘째 날

9시에 일어났다. 더 잠을 자고 싶지만 아침식사가 10시까지고 10시에는 이곳에 소속된 한국인 가이드가 리조트 곳곳을 소개해주기로 했다. 여긴 정말 넓다. 그러니 알아둘 수밖에 없다. 휴양지답게 온갖 것이 다 있다.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에서 쭈욱 나아가면 해변이 있다. 수영장 바로 근처에는 공중그네라는 것을 탈 수 있다. 리조트 좌측에는 암벽등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우측에는 헬스장이 있다. 그 외에 양궁, 자전거 투어, 요가, 태극권 등 온갖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그동안 운동을 못했으니 여기서라도 실컷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잠을 잔다. 자도 자도 계속해서 졸린다. 자전거 투어를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내 잠든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태풍의 영향권 안에 있어서 카약, 윈드 서핑, 세일링과 같은 것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늦게 일어나 수영장에서 잠깐 수영을 하다가 저녁을 먹는다. 마침 한국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모든 프로그램을 누리고 즐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이 아깝다고 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방으로 돌아와 내일 할 계획을 짠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헬스를 한 뒤 9시에 있는 자전거 투어를 가야지. 점심을 먹은 후에는 수영을 하고 암벽 등반을 하고 6시에 태극권도 해야지. 이렇게 계획을 짜놓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더욱 분명해진다. 돈이 들지 않고, 돈을 벌지 않는 일. 이것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임이 분명하다.

△셋째 날

밤 사이 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 40일 동안 쌓였던 피로가 이틀만에 풀릴 리 없다. 심지어 나는 출발하기 전 날에도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했다. 그래도 본전 생각에 어제 짠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

조금 늦게 일어난 탓에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헬스를 하고 자전거 투어를 하는 곳으로 갔지만 아무도 없다. 오늘은 비가 와서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다시 헬스장으로 돌아와 운동을 하고 방으로 돌아와서 쓰러지듯 잠이 든다. 점심을 먹고 수영을 한다. 오늘은 오후 4시에 있는 자전거 투어를 꼭 가리라고 다짐한다. 2시부터 잠들었는데 일어나니 5시 30분이다. 내일 밤 12시에 떠나긴 하지만 오늘이 거의 마지막 날이지 않은가. 이곳은 밤마다 파티가 열린다. 어마어마하게 술을 마시고 취해버릴 것이다, 라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저녁을 먹은 뒤 든 잠은 다음 날 9시까지 이어진다.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 공강일서울대 강사·국문학

△넷째 날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벌써 떠나야한다. 오전 11시 체크 아웃은 정말 끔찍하다. 한 시간에 100위안, 1만6천천원이다. 눈물을 머금고 5시간을 연장한다. 나는 다시 잠을 청한다.

길게만 느껴지던 4박 6일의 휴가가 꿈 같이 흘러내린다.

아무것도 안하려고 갔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자고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식사 메뉴를 고르지 않아도 되었고, 방을 청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 외에 내가 한 일이란 거의 자는 것 밖에 없었다. 이러려고 가긴 했지만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노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놀면 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대여, 피곤함이 나와 같다면 어디 가지 말고 그냥 자라. 부디 이렇게 잠든 사람을 깨우지 말라. 그의 지친 육체를 이해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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