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후 분단된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성취했다. 동서독의 분단 상황이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는 다른 점은 있다. 우선 소련의 점령지역인 동독은 미·영·불이 점령한 서독에 비해 영토가 매우 적다.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기점으로 양분됐다. 독일은 분단 시 전쟁이 없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6·25 전쟁은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뿐 아니라 사상과 이념의 장벽을 두텁게 했다. 한반도에도 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우리가 독일 통일과정에서 배워야 할 점을 몇 가지 생각해 본다.
먼저 우리도 서독처럼 통일 정책에 대한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서독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수차례의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되었다. 그들의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대 동독 정책은 독일 사민당(SPD) 정권이 기민당(CD)으로 교체돼도 그대로 유지됐다. 한국은 이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포용정책은 보수 정권이 등장하자 완전히 폐기하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은 과거의 대북 정책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매도하면서 대북 강경·봉쇄 정책으로 회귀했다. 문재인 정부 등장 후 과거의 포용 정책은 다시 복원됐다. 남북이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화해 협력이라는 대북 정책기조는 유지돼야 한다. 진보와 보수 정권간의 180도 바뀌는 대북 정책은 국민들의 통일의 의지와 에너지만 분산시킬 뿐이다.
독일 통일에는 유럽 통합 정책이 크게 기여했다. 서독은 통일 전 구 소련에 경제 원조를 제공해 동방 정책의 신뢰를 확보했다. 서독은 동독 주둔 소련군 철수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소련의 환심을 쌓았다. 인접 폴란드 역시 서독 총리 브란트의 과거 역사에 관한 깊은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를 받아들였다. 서독은 미국과 프랑스, 영국에 까지 그들의 대 동구 접근 정책을 설득해 안심시켰다. 우리도 ‘평화 번영 정책’에 관한 주변국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우리가 미국 못지않게 중국과 러시아 외교도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 정책은 동맹국인 미국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측과도 상당한 간극이 보인다. 우리도 언제쯤 통일전 서독과 같은 외교 역량을 갖출 수 있을까.
양 독은 1972년 체결한 양독 기본 협정을 토대로 부속 교류 협정을 철저히 지켰다. 양 독은 상호 자유 방문뿐 아니라 언론인 교류까지 성사시켰다. 서독 학생들의 동독 캠핑이 허용되고 동독 노인들의 서독 고향 방문까지 허용됐다. 동독 공산당 당수 호네커의 서독 방문에는 서독 공산당이 앞장서 환영했다. 서독은 동독의 정치범을 막대한 돈을 들여 사오기도 했다. 서독의 많은 마르크가 경제 협력 자금이란 명분으로 동독에 지원됐다. 우리의 ‘퍼주기 논쟁’은 독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양 독 간 체결한 ‘작은 합의문’의 철저한 이행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권 교체 시 그전에 합의한 수십 개의 교류 협력 문서는 휴지조각화시켜 버렸다. 심지어 남북 정상 간 합의한 선언마저 팽개쳐 버렸다. 이번 판문점 선언이나 평양 선언을 국회에서 비준처리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처럼 찾아온 남북의 해빙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의 통일 과정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우리의 대북 정책인 ‘평화와 번영 정책’은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돼야 한다. 주변 4강을 우리 대북 정책의 동조 지원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합의한 문서는 상호 존중하고 그 이행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독일과 같은 ‘작은 걸음 정책’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초래했다. 한반도 통일의 그날은 아무도 모른다. 동서독의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이 독일 통일의 초석이 됐음을 상기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