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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재결집의 조건

등록일 2018-12-03 20:30 게재일 2018-12-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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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지금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는 것은 ‘맹신’이다. 색안경 단단히 끼고 앉아 도무지 사고의 유연성이라고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편협한 아집 속에 갇혀서 민초들이야 죽든 말든 개의치 않고 좌파 정치실험을 거듭하는 ‘맹신’이 가장 큰 문제다. 공기가 안 좋을 때 미세먼지 피하듯 집안에 꼭꼭 숨어 있다가 조금 살 만하니까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나와 케케묵은 권력욕 찌꺼기로 남은 극우 선동가나 불러대는 초라한 ‘맹신’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수 재결집’ 흐름이 날마다 뉴스가 되고 있다. 누가 누구를 만났네, 누구와 무슨 말을 나눴네 세간의 관심이 치솟기 시작했다. 진보정권의 치세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급상승한 가운데 나타난 이 같은 현상은 어쩌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 입에서 나오는 ‘보수통합’이라는 용어부터 마뜩치 않다.

‘보수통합’이라는 개념이 주는 ‘리모델링’ 이미지는 사뭇 부정적이다. 그냥 권력 유지와 확산을 위해서 다짜고짜 뭉치고 보자는 심리라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난날 권력 중심에 서서 양양하던 보수 정권을 말아먹은 사람들은 한 발짝 물러서는 게 맞다. 그런 바탕 속에서 새로운 보수의 성격을 정하고 지표를 세워 재건축에 안성맞춤인 싱싱한 재목들을 과감하게 영입하는 형식의 재집결이어야 한다.

지금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국민들이 보수정당에 바라는 것은 결코 썩은 석가래, 낡은 기둥, 더러운 대들보들을 허겁지겁 주워다가 다시 끼워 맞추는 구태의연한 ‘수구 꼴보수 리모델링’ 따위는 아닐 것이다. 민심에 깊숙이 발 담근 새로운 설계도를 보고 싱싱한 재목들이 스스로 몰려드는 미더운 누각을 ‘재건축’하라는 묵시일 것이다. ‘개혁적 보수’ 또는 ‘중도개혁’이라는 미래지향적 이념좌표에 부응하는 알찬 설계도부터 완성해내는 것이 순서다.

재건축의 대목수가 되려는 보수 인사들은 적어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를 몸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급락하고 정책들이 차례로 죽을 쑤고 있으니 이때를 놓치지 말자고 달려 나와 모래처럼 손가락을 빠져나간 옛 영화와 권세를 다시 움켜쥘 요량이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험악한 배신감 허들을 너끈히 뛰어넘을 만큼 신실한 성찰부터 인정받는 것이 맞다.

‘반문연대론’ 따위의 정치공학적 결집은 ‘국민지지’를 확보하기는커녕 ‘구태정치’ 이미지만 덧낼 것이다. 말을 다 안 해서 그렇지 지금 국민들은 ‘보수’에 대한 알레르기를 깊이 감추고 있다. 아무리 덧칠을 해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 이 두꺼운 거부감을 단박에 해소할 만큼 ‘새로운 보수’의 깃발은 감동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패거리 의식에 병든 일부 민심을 겨냥한 퇴행적 재집합 호루라기라면 필경 몰락의 덫에 영 갇히고 말 것이다.

한 국가사회가 이념적 건강성을 유지하고 나아가려면,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런 것을 그르다 하는’ 철두철미한 시시비비(是是非非) 정신으로 무장한 평범한 중도민심이 강해야 한다. 군중심리에 기대어 선전 선동에 혈안에 돼 있는 병든 정치가 판을 치는 오늘날 나라의 무게중심을 든든히 잡아주는 평형수로서 민심이 충실할 때 비로소 희망이 있다. 하염없이 중우정치(衆愚政治)를 조장하는 이 저질정치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정치 혁명이 절실한 상황이다.

‘보수 정치’가 이 같은 시대적 과업을 지금 완수해내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정말 미래가 사라진다. 작금의 ‘보수 재결집’이 지난날 국민들을 절망시킨 ‘불통 보수’의 회귀를 꿈꾸는 것이라면 이건 결코 아니다. 만일 그런 성격의 흐름으로 민심에 다시 각인된다면 이 땅에 ‘보수’는 정말 끝이다. 어떻게든 중도의 민심 밭을 건실하게 일궈내야 한다. ‘보수통합’이 아니다. 제대로 된 ‘보수 재건축’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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