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혁명 직후에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이 넘는 중노동에 시달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자유방임형 경제 정책이 난무할 때, 자본가들은 한 푼이라도 임금을 아끼기 위해 부녀자 혹은 아동을 고용하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이었지요.
베니스의 한 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가는 소녀 피파(Pippa)는 1년 중 단 하루만 주어지는 휴일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 소중한 하루의 휴가를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던 피파는 결심하지요. 마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자신이 동경하던 삶을 누리던 네 사람을 떠올리고 이들의 창가를 지나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존경과 기쁨의 노래를 부르기로….
로버트 브라우닝은 이런 스토리를 담은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Pippa Passess, 1841)’를 썼습니다. 피파가 부와 권력을 기준으로 행복할 것이라 믿었던 그 네 사람은 실은 제 각각 다른 이유로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오티마는 살인을 저지르고 양심의 고통에 어쩔 줄 모르다가 지나가던 피파의 노래를 듣고 자신의 끔찍한 죄를 깨닫고 자수를 결심합니다. 줄스는 거짓 결혼에 분개해 아내를 버리기로 했다가 피파의 노래를 듣고 아내를 향한 새로운 사랑을 싹 틔우게 되지요. 루이는 폭정을 일삼는 난폭한 왕을 암살하려던 혁명가입니다. 그 또한 피파의 노래에 마음이 녹아내려 암살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한 늙은 성직자는 속세의 악에 무기력하게 굴복하기 직전, 피파의 노래를 듣고 영적 각성을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재무장하고 악과 싸우기로 결단하지요. 날이 저물고, 1년에 단 하루 밖에 없는 소중한 휴가를 헛되이 낭비했다는 생각으로 슬픔에 가득 잠긴 피파는 고달픈 내일의 노동을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듭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계획과 막대한 자금, 그리고 엄청난 인력이 동원되어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피파의 노래처럼, 진심을 담은 내 영혼의 울림을 소리없이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그 파장은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채 바꿀 수 있습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배어 나오고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한다.” 중용 23장의 지혜가 떠오르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