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한 계단 아래 서 볼 것

등록일 2019-04-11 19:46 게재일 2019-04-12 18면
스크랩버튼

1980년대 중반의 일입니다. 한 유명한 교수가 뉴욕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객실 안을 마구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은 채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무례한 사람입니다. 참다못한 교수는 말을 건넵니다. “여보시오, 아이들을 좀 어떻게 해 보시는 게 좋지 않겠소?” 그제서야 남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당신 말이 맞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남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시간 전에 아이들 엄마가 수술실에서 사망했거든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난 교수와 지하철 객실 주위 사람들은 이 아버지와 그 아이들을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방금까지 이 남자는 무례하기 짝이 없고 교양없는 쓰레기였지만 이제 아내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슬픔에 가득 잠긴 로맨티스트로 보이고, 돼먹지 못한 아이들은 엄마를 잃은 불쌍한 천사처럼 보이게 된 것이지요. 이 사건을 겪은 유명한 대학교수는 스티븐 코비 박사입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포함해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편견’에 사로잡힌 채 인지하고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식량이 다 떨어져 일행과 함께 며칠을 굶으며 여행하던 중 공자는 제자 안회가 어렵게 쌀을 구해와 밥을 짓다 몰래 밥을 한줌 입에 넣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제자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지요. 하지만 실상은 천장에서 흙이 떨어져 스승께 드리지 못할 부분을 버리자니 아까워 삼킨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잠시나마 의심한 것을 후회하며 말합니다.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 두어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는 영어로 Understand입니다. Under + Stand가 결합된 단어지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아니고, 동일한 칸에서 수평적으로 눈을 맞추는 것도 아닙니다. 타인 보다 한 칸 또는 여러 칸을 아래에 서야 비로소 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회처럼 억울한 사람은 없는가? 지하철의 아빠처럼 슬픈 사람은 없는가? 오늘은 계단에서 한 칸만 물러서서 상대를 텅 빈 마음으로 온전히 바라보아 주는 예쁜 하루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조신영의 새벽편지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