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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두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을 때

등록일 2019-04-16 19:09 게재일 2019-04-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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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는 변하지 않는가? 교실은 수십년째 같은 모양, 같은 방식을 왜 고수하고 있는가? 의문을 가진 부호가 있었습니다.

1930년 보스톤 북부에 있는 150년 전통의 유명 사립 고등학교를 찾아가 루이스 페리 교장에게 제안하지요. “틀에 박힌 주입식 교육 방법을 바꿀 수 있는 완전히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을 제시할 수 있다면 거액을 기부하겠소.”

석유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에드워드 하크니스(Edward Harkness)는 현재 가치로 약 800억원의 금액을 이 학교의 교육 실험에 선뜻 투자하기로 제안합니다.

교장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교사들과 고심 끝에 상담교사의 충원이나 노벨상 수상자를 초빙, 영감을 불어넣는 강연을 확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하크니스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뜻입니다. 학교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뒤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안을 다시 내놓으라 요구하지요. 교장과 교사들은 다시 6개월 밤샘 작업을 합니다. 비로소 하크니스의 입가에 웃음이 번져 나지요.

정원을 12명 단위 모든 수업은 토론으로 진행한다. 1년을 3학기로 나누고, 1학기에 10주 수업을 한다. 역사나 문학 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음악, 미술까지 교과서를 없애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한다. 학생들은 원탁에 둘러 앉아 서로를 마주보고 질문하고 응답하며 서로를 가르친다. 교사는 이 토론을 진행하되 가르치지 않는다.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Phillips Exter Academy). 미국 최고의 사립고등학교입니다. 학생들은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토론할 내용을 철저하게 공부해 옵니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지요. 하버드, 예일, 브라운, 콜럼비아 등. 하크니스의 기부 이래 80년 동안 최고의 인재를 키워내는 탄탄한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학생들은 경쟁하지 않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서로에게 배웁니다. 타원형 책상에 하크니스 테이블(Harkness Table)이라는 이름을 붙이지요. 신입생들이 읽는 학교 규칙이 바로 ‘Facebook’입니다. 졸업생 중 한 아이가 세운 회사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입니다.

자그마한 방 한 칸, 빼곡하게 고전으로 가득한 책장이 둘러 있고 큼직한 타원형 테이블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이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교육이 들불처럼 퍼져 나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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