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기업부터 소상공인 심지어 일반 시민들까지도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업의 생산제품을 대구 경북지역 생산품이라고 받지 않겠다고 하는 타 지역업체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주요 유통업자들은 물류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은 불편을 느끼며, 퇴근길에 눈에 뜨이는 약국마다 공적이냐 사적이냐, 대형이냐 중형이냐를 불문하고 방역 마스크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생겨난 습관적 행동이 되어버렸다. 지역 내 사람의 이동 자체가 적어지다 보니 어느새 포항이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며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었던 지역 관광업계의 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적어도 관광업계는 중후장대한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여타 산업보다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담은 프로그램을 장착하듯 소프트웨어적인 대응이 원활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글로벌 관광사업(tourism)은 항상 변신에 성공해왔다.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해당 국가나 지역마다 문화적 기반과 풍습, 종교사상, 그리고 인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것을 사업으로 하는 관광사업은 그 자체로서 다양성을 지닌다. 그래서 관광객이 특정 이벤트에 참가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오감으로 경험한 적 없는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먹고,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감동하고 만족하는 것이다. 굳이 돈을 들이거나 관광상품을 찾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다. 그저 일상 생활공간과 행동 양식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효과는 나타난다. 모처럼 산을 오르거나 바다를 찾기만 해도 현대인들은 가슴이 트이며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관광사업은 우리 주변에서 함께 숨 쉬고 존재하고 있는 밀착형 산업의 하나다.
그동안 관광사업은 해당 여행상품을 소비하는 주체의 소득수준, 여행 형태, 선호 주제 등에 따라 온갖 신기하고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며 성장해왔다. 청소년들의 수학여행, 직장인이나 공무원의 산업체 견학, 갓 결혼한 청춘남녀의 신혼여행, 이제 모든 것을 내려 두고 젊을 때 일하느라 미루고 미루었던 은퇴 여행 등 관광 목적과 종류는 무한하다. 이동수단이 어떤가에 따라 도보여행, 배낭여행, 자전거여행, 자동차여행 등은 물론 최근에는 크루즈여행까지도 유행하고 있다. 관광 여행상품이 내세우는 주제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수려한 경치를 찾아 우르르 몰려다니며 구경만 하던 ‘보는’ 관광에서 이제는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관광으로 변신한 지도 꽤 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아예 호텔 객실에서만 휴식하는 ‘호캉스’라는 것까지 생겨났다.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은 점차 온천 등지에서 식도락과 함께 힐링, 웰빙 등을 추구하는 웰니스(wellness) 관광을 추구하고 있다. 관광사업의 주제가 계속 변신해 오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이러한 관광사업의 빠른 흐름 속에서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주제가 주목받고 있다.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암흑의 관광이나 어두운 관광 정도가 되겠지만, 결국 밝고 즐거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핵심이 있다. 그동안 우리가 관광이라고 하면 어떠한 즐거운 기념일, 축하할만한 일이 있을 때, 직장인이라면 포상을 받았을 때 주로 여행상품권을 받기도 하였다. 그만큼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관광이라면 즐겁고 좋은 것을 보고 느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다크투어리즘은 재해나 전쟁과 같이 인간의 슬픔, 죽음, 절망 등을 강제로 떠올리게 하는 역사의 현장을 내세운다. 그것을 통해 평소 잊고 있던 대형 재난과 재해를 경계하고, 전쟁이 주는 잔혹함과 슬픈 희생을 되새기며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정숙하고 숙연한 교육적인 관광이다.
가장 유명한 다크투어리즘이라면 역시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과거 나치가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해 운영하였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수용소라고 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수용소에는 철로를 통해 죽음으로 향한다는 ‘죽음의 문’, 벽에 세워두고 유대인을 총살하였던 ‘죽음의 벽’과 함께 당시 유대인들의 수용소 내부와 유품 등이 전시되어 매년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 46분과 9시 3분에 보스턴 로건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민항기가 각각 뉴욕의 109층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였다. 9·11테러 사건이다. 이 테러는 전 세계를 경악시키고 이후 테러단체와의 기나긴 전쟁을 부르기도 하였다. 무너진 두 건물 자리의 흔적인 그라운드제로에는 지금도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날의 긴박했고 참혹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9·11메모리얼플라자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들어간 위령비인 2개의 인공폭포가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온갖 난관을 헤치고 독립한 미국을 상징하는 104층의 세계무역센터(one world trade center)는 미국 독립연도인 1776피트(약 541미터)로 세워졌다. 이 건물 전망대의 관람문의 전화번호의 끝자리도 1776번이다. 지난해 5월 미국의 유명 TV 채널에서 방영된 5부작의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이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는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를 다루고 있다. 체르노빌원전은 지금도 반경 30킬로미터 이내는 출입 금지 지역이다. 하지만 체르노빌 원전사고 25주년인 2011년부터는 일부를 외부 관광객에게 개방하기 시작하여 매년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2018년에는 연간 7만2천명의 관광객이 다녀갔고 지난해에는 TV드라마의 유행에 힘입어 약 30% 정도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체르노빌원전 주변을 관광지로 더욱 개발한다는 대통령령에 서명하였다. 이처럼 각국이나 지역에서는 어두웠던 역사의 현장마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심지어 일본마저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후쿠시마원전 지역을 이번 도쿄올림픽 개최 기간에 맞추어 개방한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은 피해자였거나, 사고를 내었던 당사자들이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어둠보다는 더욱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스스로 피를 흘리며 대한민국을 수호한 현장과 관련 기념물들을 도시 곳곳에 수없이 간직하고 있다. 매년 6월에만 군인단체나 국가유공자들이 찾아오는 포항으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포항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하였던 한국전쟁 당시 기계 안강, 비학산, 형산강 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의 최고 격전지였다.
포항은 명실상부한 충절, 호국 도시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보다 2개월이나 일찍 성공적으로 끝냈던 미 제1기병사단의 포항상륙작전, 포항출신 학도병 수백 명이 산화하였던 기계 안강전투, 소티재 전투, 삿갓봉고지(93고지, 일명 천마산) 전투 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침 2020년은 6·25 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국내외 관광객들이 한국전쟁 최후의 보루였던 포항을 찾아 포항지구전투전적비,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전몰학도충혼탑 등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전쟁의 참혹함과 호국정신을 되새기는 포항만이 가능한 어둠의 관광(dark tourism)을 상품화하여 지금 어둠에 잠긴 지역 관광업계가 활성화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으면 한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