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한국인이어서 미안합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한 중앙 일간지에 실렸다. 칼럼의 필자인 기자는 미국 출장 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 승객이 마스크를 쓰고 주변을 소독하는 모습을 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인이어서 미안했다고 적었다. 이 칼럼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비난의 댓글들이 꼬리를 물었고, SNS에서는 칼럼에 비판적인 글들이 한동안 봇물 터지듯 했다.
미안함을 느꼈다는데, 어쩌랴. 그의 미안한 감정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합리적이지도 않고 논리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개인적 감정의 글이 버젓이 실리는 신문에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다. 3월 31일 코로나19 실시간 상황판(https://coronaboard.com/)에 따르면, 확진자가 발생한 203개 국가 중에서 미국은 16만4천253명으로 이탈리아의 10만1천739명을 훌쩍 뛰어넘어 확진자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11위 네덜란드, 12위 터키에 이어 확진자 9천786명으로 13위이다. 14위 오스트리아나, 15위 캐나다의 확진자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데 비하여 한국은 주춤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순위는 곧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완치율은 55.3%로 93.3%의 중국, 57.3%의 바레인에 이어 3위이고, 치명률(사망률)은 1.7%로 한참 뒤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순위인 82위이다.
우리 의료진과 방역당국의 피땀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코로나19를 독감바이러스보다 못한 것으로 가벼이 치부하던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지난 3월 24일 코로나 대응의 가장 모범국가인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하여 진단키트의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국내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들이 불안한 마음에 자신들의 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오히려 외국에 있는 선수들이 안전한 나라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SK와이번즈 소속의 외국인 선수 로맥은 캐나다에서 아내의 출산을 도운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은 코로나19 확산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한국 국민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 실천하고 있고, 사재기도 없다”면서 한국의 안전함을 세계에 알렸다.
국뽕이라는 말이 있다. 국가와 히로뽕을 합친 유행어로, 극단적인 민족주의 또는 자국우월주의의 행태에 대한 부정적인 뜻을 품고 있다. 통계 숫자를 나열하고 외국 언론의 찬사를 언급하며 한국의 코로나19 대처 상황을 미화하거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과도하게 자랑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이 멈춰 선 가운데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유초중고에서 대학까지의 교육도,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힘겹고 심각한데 굳이 국뽕처럼 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좋다.
혹시 기자의 옆자리에 탔던 그 미국인은 미국인이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지금 가지고 있을까? 아직도 기자는 자신이 한국인인 것이 미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