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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나’의 바깥에도 있다

등록일 2020-06-11 20:01 게재일 2020-06-1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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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역시 여러 유형의 기질을 타고 나는 것 같다. 프로이트가 말하기를, 장미꽃 만발한 화원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저 꽃도 곧 시들겠구나 하고 우울해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낙천가와 우울증 성향의 차이를 말해 주는 것이겠지만, 같은 현상을 대하고도 전혀 다른 해석에 기우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많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 부류의 사람들은 원인을 여러가지로 따져 이런 원인, 저런 원인, 하고 양적인 비율을 할당하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그 가운데 오로지 하나의 근본적인 원인을 반드시 찾아내어 그것과 싸우고자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2,30대 어디쯤까지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내서 그것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얽힌 실타래 풀리듯 저절로 풀릴 것 같은 마법적인 사고에 빠져 있었다고 할까. 그후에는 그런 사고를 버리려 노력했다. 질 대신에 양을, 본질 대신에 문제를 이루는 원인 그룹을 찾아내서 비중이 높은 것부터 낮은 것까지 중요성을 그에 맞게 부여하려 했다.

그럼으로써 사실 나는 후자의 사고법에 익숙했을 때 친했던 사람들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니, 종교적 근본주의 같은 것으로는 현실 문제에 무력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삶을 결코 많이 살았다고 할 수는 없는데도 나는 한때는 문제를 주로 내 안에서 찾는 이른바 ‘반성적’ 체질을 갖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남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해 볼 수 없었고 내 자신 아주 약점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공격적인 사람들, 사태를 호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야말로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문제의 원인을 나와 내 바깥에서 고루 찾고 그 원인자의 중요도만큼 의미를 부여해서 함께 해결해 나가려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여전히 나는 본질주의적 사고법에 기울어 있는 불균형의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은 원래 그런 불완전, 결핍, 편향을 가진 존재이고, 그래서 조화니 원만이니 원융이니를 이상으로 삼는다. 문제는 나만에 있지 않고 내가 없어져도 문제는 남는다. 또 나에게만 이유가 있지 않기에 내 외부의 문제들과 싸우다 보면 내 삶이 좀더 나아질 수도 있다.

며칠 전 파주 자택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는 마포 쉼터 소장님의 소식이 들렸다. 왜 ‘스스로’였나? 어디까지 진실일까? 생각하면서 짓눌리기 쉬운 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위해 용기를 내서 싸워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이 사회가 그런 힘 필요한 사람들을 더 잘 지켜줄 수 있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늘 문제에 직면해 있고 어떻게든 견뎌가며 나아가야 한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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