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었다. 감포 고갯길을 막 들어서는데 늙수레한 산골 아저씨가 팔을 흔들며 차를 세웠다. 가까이서 보니 늦가을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금방 날이 어두워지겠다 싶어 차 문을 열었다.
그는 타자마자 무안할 정도로 굽실굽실 거리며 인사를 했다. 요 고갯길 너머 동네에 산다면서 들통 하나를 발 사이에 놓고 양발로 꽉 잡았다. 이곳에는 버스가 자주 없어서 가끔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신세를 진다고 했다. 만약에 타고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절대로 책임을 안 지게 한다며 묻지도 않은 일에 손사래를 치면서까지 설명했다. 나는 미소로 대답했다. 이제야 한숨을 돌렸는지 힐끔거리며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쳐다봤다. 차분하게 운전하는 모습이 얼굴하고 꼭 닮았다며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인사를 또 시작했다.
듣는 순간 속이 뜨끔했다. 과속하다가 접촉 사고를 낸지 불과 며칠 사이였다.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를 출퇴근 하다 보니 자질구레한 자동차 문제가 가끔 발생했다. 출근시간을 간당간당 맞추며 다니는 습관 때문에 운전을 급하게 했다. 늘 혼자만 타고 다녀서 옆자리에 배려할 일이 없으므로 운전을 거칠게 하는 버릇도 있다. 그런데도 멋모르고 하는 칭찬을 들으니 속으로 우습기도 하고 그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고개를 넘어서자, 그는 서서히 내릴 준비를 했다. 똑바로 보이는 저 언덕위에서 잘생긴 소나무 앞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들통 뚜껑을 툭 치면서 한번 들썩거려 보더니 얼른 다시 닫았다. “이놈들이 벌써 겨울잠 자러 들어갔는지 없어서 늦도록 잡았네.” 라며 밑도 끝도 없는 혼잣말을 했다. 억지로 한통 채운다고 저녁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둥, 뱀탕집에는 내일 아침에 넘겨야겠다는 둥, 중얼중얼 희귀한 말만 계속했다.
그럼 저 들통 속에 뱀이 와글와글 하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하마터면 운전대를 놓칠 뻔했다. 말문은 이미 탁 막혔고, 불과 백 미터도 안 남은 거리를 두고 백리 길을 가는 듯 했다. 온몸이 오글거려서 도착하자마자 얼른 내리라며 다그쳤다. 그는 잘 타고 왔다는 인사말과 함께 혹시나 싶은지 내리던 발을 이쪽저쪽 들어보며 차 밑을 유심히 살폈다. 유유자적 걸어가는 뒷모습은 마치 뱀이나 산나물이나 똑같다고 여기는 사람 같았다.
누군들 뱀을 좋아하랴. 산을 오르다 지나가는 뱀 꼬리만 봐도 간담이 서늘하거늘 한동안 기분이 언짢았다. 온갖 뱀이 생각났다. 어느 날 군견이 수색을 하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는 뉴스가 떠올라 다시 가슴이 내려앉았다. 뱀 그림이 있는 하얀색 셔츠를 입고 도마뱀에게 사랑스런 눈빛을 보내는 파충류 학자 얼굴도 생각나서 눈을 질끈 감았다. 좁은 차 안에서 바글거리는 뱀과 함께 드라이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아는 게 병이 됐다.
어느 군인의 입담이 떠올랐다. 동료 한 명과 야간 보초를 마치고 막사로 가는 길목에서 바닥에 떨어진 닭 한 마리를 발견했다. 달밤에 누가 볼세라 얼른 주워 막사 뒤로 가서 둘만의 비밀로 그것을 삶았다. 어찌나 구수하고 담백하던지 정신없이 뜯어 먹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간밤에 먹었던 닭이 생각나서 뼈다귀라도 한 번 더 감상하려고 슬슬 가보았다. 그런데 뼈다귀 주변에 허연 밥풀이 눈송이처럼 흩어져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불어터진 구더기였다. 닭 속에 가득 찬 구더기까지 뜯어먹으면서 툭툭 흘린 것이었다. 순간 군인은 심한 구토와 함께 그 후로는 닭고기를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모르는 게 약이었다.
그나저나 고민이다. 앞으로 이 고갯길에서 사람을 태우나? 마나? / 최경하(경주시 현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