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K박사의 연구(1929)’
과학은 인간이 저 미지의 바깥 세계에 대해 갖기 마련인 호기심을 시각화된 도구를 통해 풀어내어 우리 눈 앞에 명료하게 제시하는 학문이다. 지금 우리 인류의 진보가 과학의 발전으로 갈음되기 마련인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이 얼마든지 발전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외부 세계에 대해 미지의 영역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 지식이 세계를 해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열린 구멍이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다. 앨리스가 그 구멍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갔듯, 인간은 우리 세계를 확정하는 과학적 지식들의 틈새를 통해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는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돌입한다.
시대를 풍미했던 쥘 베른(1828~1905)의 과학소설(science fiction), ‘지구 속 여행(1864)’이나 ‘해저 2만리(1870)’, ‘80일 간의 세계일주(1873)’ 등 우주여행이나 해저의 잠수함 등, 당시 세계에서 확립된 자연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 지식을 활용하여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바람을 다룬 것이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상상과 욕망은 과학 기술이 얼마간 발전했다고 해서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마리로 단단하게 엮인 지식의 체계 안쪽으로 더욱 더 깊이 파고 든다. 인간의 영혼의 실체 내지는 4차원 같은 우주의 구조, 시간 여행 등에 대한 상상은 인간에게 호기심과 공포를 자극하면서 과학적 세계와는 또 다른 자리에 이야기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세계를 이해하는 인간의 과학적 지식이 축적될수록 오히려 인간의 상상은 더욱 더 촉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1930년대 무렵, 한국, 아니 전 세계를 덮쳤던 과학적 지식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공포는 바로 맬서스(1766~1834)가 이미 한 세기도 전에 남긴 ‘인구론’에서 비롯되었다. 인구의 자연 증가가 기하급수적인 데 비해, 식량의 생산은 산술급수적이므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빈곤해질 수 없다는 부정적인 미래 예측이었던 것이다. 이 맬서스의 인구론은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며 인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가 팽배하던 시대에 다시 등장하여 당시 사회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과학적인 논의는 이처럼 인간의 미지의 시대에 대한 비관적 견해와 결합될 때, 인간에게 치명적인 공포로 작동한다.
번역이나 번안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가장 최초의 과학소설로 간주되는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1929)’는 맬서스가 불러일으킨 공포에서 시작한다.
‘K박사’는 맬서스의 신봉자로, 인류의 비관적인 미래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대변을 처리하여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인간의 대변을 다시 식량으로 활용한다는 것에 대해 인간이 갖는 본질적 거부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박사는 이른바 매드사이언티스트, 미친과학자의 전형이다. 과학자와 조수들은 세부적인 사실은 숨기고 여러 명사를 초청하여 시식회를 여는데,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구토를 하며 시식회는 난장판이 된다. 인간의 이러한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던 박사는 지방으로 피신했다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먹지 않는 ‘개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제야 구토를 하며 인간들의 반응을 이해한다.
김동인의 이 흥미로운 소설 속에는 당시 맬서스가 초래했던 인류의 멸망에 대한 공포가 투영되어 있다. 작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박사라는 독특한 존재를 제시하며 이른바 무한순환이 가능한 생태 시스템을 고안하고 그것이 왜 불가능한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실체는 당연히 인간이 갖고 있는 생래적 거부감 때문이다. 소설을 쓰며 책상 맡에서 인류 사회에 대한 비관과 새로운 가능성 사이를 오가면서 상상했을 작가 김동인을 생각해보면 꽤 재미있다.
상상의 이야기는 실제의 일이라면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