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고 나니 뒤뜰의 대나무 숲은 겨울의 한기를 씻어 곧고 푸른 줄기가 더욱 생기를 찾고 마당 앞 담장 곁에 있는 몇 그루 나무들도 가지에 물기를 머금은 듯하다. 벌써 꽃망울 부푼 나무들도 있고 몇 년간 미처 손쓰지 않은 탓인지 삐죽한 가지들이 제멋대로 자란 녀석도 있다. ‘가지를 칠 때가 되었지’ 하고 나무들을 둘러 보았다. 산야에 자라는 나무들은 그곳의 환경에 맞게 제멋대로 자라겠지만 정원의 나무는 알뜰히 가꾸어 주어야만 좋은 모습을 갖는다.
전정(剪定) 작업은 불필요하거나 오래된 가지를 자르고 다듬는 것을 말하는 데, 나무의 특성을 살려 외형을 다듬으며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할 수 있게 속 가지를 솎아주고 또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 잔가지를 잘라주어 바람직한 성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좁은 정원을 10여 년째 돌보다 보니 몇 가지 기본적 지식을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전지(剪枝)하는 순서로는 키우고 싶은 수형에 맞게, 큰 가지나 굵은 가지부터 자르는데 위에서 아래로, 또 밖에서 안으로 가지들을 정리하면 된단다. 그래도 가지를 자르다 보면 멈칫멈칫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자를 때의 세부적인 규칙도 있다. 서로 엇갈리거나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자라는 가지, 아래로 축 처지는 가지와 자기 혼자 쭉 올라가는 가지를 균형 있게 자르고, 물론 부러졌거나 죽거나 약한 가지는 모두 자른다.
보리수나무는 여름이면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많이 따먹었는데 작년 이맘때 앞 담장을 향하는 낮고 굵은 밑가지를 잘랐더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열매도 많이 달리지 않았고 도장지들만 쑥쑥 자라고 있다. 꽃말이 ‘부귀’라는 배롱나무도 매년 매끄러운 가지 끝에 화려한 분홍 꽃들을 피워 그냥 두었더니 이제 내 키를 훌쩍 넘어 자랐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사다리를 놓고 전지가위도 큰 것 작은 것 그리고 톱도 꺼내 들었다. 우선 눈에 먼저 띄는 웃자란 도장지를 솎아 자르고 내가 원하는 나무의 모양을 그리며 가지들을 잘라 나갔다.
해마다 노란 모과를 한 소쿠리씩 던져주던 모과나무도 그새 자라서 앞집 지붕 보다 커버렸다. 어렵게 나무 사이를 기어올라 중앙의 굵은 가지를 싹둑 잘라서 키를 낮추었더니 한결 보기가 좋다. 석류나무도 얽히고설켜 서로 가지를 부딪히던 것을 많이 잘랐다. 가죽나무는 벌써 망울이 보이기에 올봄 새순을 따먹은 후에 가지치기할 작정이다.
우리 일상의 삶도 ‘가지자르기’가 필요하다. 마구 벌여 놓은 일들, 복잡한 인간관계 등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경제력에 맞게 잘 자르고 가다듬어서 모양 좋고 꽃들이 잘 어울려 피고 열매도 풍성하도록 해야한다. 물론 요즘의 세태를 보면 정치계도 깔끔한 전지작업이 필요하다. 제멋대로 놓아둔 나무들은 가지들이 서로 엉켜 수형은 물론 병충해가 들끓어 나무둥치가 썩고 죽은 잎은 가지에 쌓여 햇빛이 들지 않아 그 열매조차도 맛을 잃기 때문이다.
곧 4월, 뜰의 소나무를 전지할 시기이다. 새순을 따고 가지를 다듬어 우아하고 품위 있는 자태를 가질 수 있도록 잘 가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