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이 늘고 있다. 2011년 남자 76.8세, 여자 83.6세이던 것이 202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남자는 80.5세, 여자는 86.4세라고 한다. 주위에 90 넘은 어르신들도 눈에 많이 띈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위기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위기는 자기 삶에 대한 불만족감이 커지는 데서 온다. 경제적 문제나 건강 문제도 삶에 대한 만족감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만족감이 크면 경제나 건강 문제도 극복하기 쉬워진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힘 기르기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바로 며칠 전은 우연이 겹친 날이다. 도서관에서 ‘100 인생 그림책’을 빌린 날, 몇 달 전 가입한 북클럽에서 굿즈로 ‘인생 노트’를 보내주었으니 말이다. ‘100 인생 그림책’은 100살까지의 삶을 나이마다 한 장면으로 표현한 책이다. 저자 하이케 팔러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초등학생부터 아흔 살 할머니, 여러 국적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명망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시리아 난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그 나이에 당신이 배운 것은 무엇이냐고. 노후의 삶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60세 이후의 장면에 눈길이 더 간다.
68세에 어쩌면 너만의 정원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 70세에도 자신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으며, 생전 처음 해본 일이 마음에 든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발견은 나이듦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준다. 이런 장면들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실제 인터뷰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 크게 공감이 된다.
‘인생 노트’는 시기별로 자신의 감정, 행동, 기호 등을 기록하도록 질문으로 구성된 책이다. 책이라지만 내가 칸을 채워야 하기에 노트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스스로 만드는 인생 그림책이라고나 할까? 그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등을 채우다 보면, 그때가 또렷이 기억나면서 내가 배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 사노 요코는 암 진단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대신 병원비로 재규어 대리점에 가서 잉글리시 그린의 재규어를 샀다고 한다. ‘아,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 하면서. 그녀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서 마음에 드는 재규어를 살 수 있었던 것은 평상시에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등의 에세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성찰과 기록을 꾸준히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평소 기록하는 힘을 놓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93세에 쓰신 자서전 제목도 ‘대한인의 방랑과 사랑-공룡 발자국 같은 기억들’이다. 그것을 통해 아버지는 인생의 시기마다 무엇을 배웠는지 발견하셨고, 그 발견을 통해 또 많은 것을 배우셨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한 삶을 위해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는 더 중요해진다. 지난 시간 배운 것을 떠올려보자. 이런 발견은 동료와 같이 하면 더 좋다. 뜻이 맞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 인생 그림책을 같이 읽자고. 인생 노트도 채운다면 금상첨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