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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누렁소와 나

등록일 2021-05-24 20:06 게재일 2021-05-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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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성 호

웃음기 없는 눈빛을 맞추며

속내를 찾아들면, 반갑쑤다는 네 생각이

내 마음 읽어내리는 동안

잠시 부끄러움이 솟구쳐올라

담벼락에 박혀 빛나는 사금파리로 옮긴다

몸속 꼼지락거리는 작은 벌레

코딱지만한 경계 안으로 유리조각 소꿉들을 주워

노는 나를 바라본다

여자아이 등에 업힌 베개가 낮잠을 자고

야초들은 뜯기어 반찬이 되고 밥이 되고

나는 땔감을 쌓으며 여린 아내를 윽박지르고

장인은 검은 썬글라스에 팔뚝 굵은 운전수

새댁 어미는 초록 치마에 늘 꽃이 핀 저고리다

알고 보면 소는 말없는 이야기꾼

내 몸 전체를 둘러보곤

염불을 하다가도 가끔 하늘 쳐다보며

혼자서 씩 웃곤하는

 

어린 시절 봄날의 평화로운 풍경을 펼치고 있다. 온통 빠져들었던 소꿉놀이, 그 재미난 유년의 시간을 가만히 건너다보던 누렁소의 눈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현실의 가파르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시인은 이런 평화경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느리지만 정겹고 따스한 유년의 시간들을 옹호하고 그리워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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