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통일을 이룬 문무왕.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무왕은 왕실의 권위와 왕조 창건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월지(月池)를 조성(674)하고 동궁(東宮)을 창조(創造·679)한다. 여기에서 동궁 건설은 말 그대로 창조라는 단어가 쓰였다. 얼마나 대단한 것을 지었길래 창조라는 단어를 썼을까?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창조라는 단어는 총 2회 확인되는데 첫째는 황룡사, 둘째는 동궁이다. 황룡사의 규모와 9층 목탑 등을 본다면, 당시 동궁의 조성이 끼쳤던 사회적 파급력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러한 동궁을 설명함에 앞서 같은 사적명으로 묶이고 있는 월지를 짚고 넘어가보자. 월지는 근·현대까지 雁鴨池(안압지)로 불렸으며, 2011년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에는 바다에 임해있는 전각이라는 뜻의 臨海殿址(임해전지)로 불려왔다. 이후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여러 연구를 통해 연못의 본래 이름이 월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명칭에 대해 여러 연구자들도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동궁은 그 사정이 조금 다르다. 현재는 동궁의 위치와 영역, 역할에 대해 많은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동궁을 둘러싼 논란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월지 서편에 위치한 대형 건물지들의 역할과 기능, 실제 동궁의 범위와 위치, 왕궁 내부에 위치한 內帝釋宮(내제석궁)인 天柱寺(천주사)의 위치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월지 서편 건물지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알아보자. 최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를 통해 전모가 드러난 A건물지는 경복궁의 근정전과 닮은 내부 구조(내진열의 減柱), 복도(回廊)로 둘러싸인 건물지, 대형 적심, 출입시설에 설치된 踏道(답도) 등의 특징을 통해 정전(正殿)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추정의 배경은 A건물지보다 격이 높은 건물이 경주에서는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A건물지가 정전의 기능을 수행한다면 왕의 궁성인 월성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점도 동궁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미스터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동궁의 위치와 역할이다. 그림을 참고하면 동궁의 위치로 추정된 곳은 크게 네 곳으로, 월지 서편 건물지와 동편 영역을 포함한 곳을 동궁으로 보는 견해, 월지의 동편을 동궁· 월지 서편은 월지궁으로 보는 견해, 국립경주박물관의 남측을 동궁으로 보는 견해가 기존에 있었고, 최근 동궁과 월지 A건물지의 서편을 동궁으로 보는 견해가 새롭게 대두되었다. 이렇듯 연구자마다 다양한 학설을 제시했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바꿔 말하면 여전히 동궁과 월지에서 동궁은 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다만 월지 주변에서 확인되는 동궁 관련 유물, 문헌에서 확인되는 동궁관(東宮官) 기구(機構)속에 월지 관련 관청명 등으로 볼 때 월지 주변에 동궁이 있었던 것은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동궁의 기능에 대해서 살펴보자. 동궁은 태자의 거처 혹은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문헌 속 임해전에서 펼쳐진 많은 횟수의 주연(酒宴)을 예로 들며 태자의 교육기관 내에 연회를 베풀던 임해전이 위치한다는 것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즉, 외국의 사신 접대나 연회가 펼쳐지는 전각이 있는 곳에 태자의 교육기관이 있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이 그 골자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절대적인 왕이 군림하고 관할하는 왕궁 내에서 태자의 교육과 연회를 같은 영역에서 치루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 의견 또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왕궁 내부에 위치한 사찰, 내제석궁인 천주사의 위치이다. 천주사에 대한 단서는 동궁과 월지 주변에서 발견된 ‘천주’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 1점이다. 하지만 언제든 위치 이동이 가능한 기와라는 점에서 기와의 출토지가 천주사가 될 수 있는 근거는 빈약하다. 다만 1975~76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시행한 안압지 발굴조사에서는 다량의 불교 관련 유물이 확인되었다. 본존불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대형 청동제 부처 귀를 시작으로 장식 용도로 추정되는 板佛(판불), 여러 점의 금동제 불상 등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동궁과 월지 주변에 천주사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하지만 이러한 유물도 천주사의 명확한 위치를 웅변해주지는 않는다. 이 또한 발굴조사 범위의 확장을 통해 풀어가야 할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
동궁과 월지는 수많은 경주 관광객들이 한번은 꼭 들리는 소위 ‘핫’한 관광명소 중 하나로 자리했다. 동궁과 월지를 발굴조사 중인 필자도 화려한 야경과 고풍스럽게 복원된 건물 사이를 걷노라면 마치 왕이 되어 궁 한가운데를 거닐고 있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이면에는 많은 연구자들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수수께끼도 숨겨져 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동궁과 월지에 관한 여러 수수께끼들을 함께 풀어가며 유적지를 관람하신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