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동반자, 미생물’<br/><br/>도로시 크로퍼드 지음·김영사 펴냄<br/>인문·1만7천500원
바이러스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의학미생물학과 명예교수인 도로시 크로퍼드는 ‘치명적 동반자, 미생물’(김영사)에서 미생물학자의 관점에서 미생물과 인류가 만들어온 역사를 서술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미치오 카쿠의 ‘초공간’, 닉 레인의 ‘산소’등 현대 과학저술의 이정표가 된 책들이 자리한 ‘옥스퍼드 랜드마크 사이언스 시리즈’의 한 권이기도 한 이 책은 미생물의 출현부터 사스와 코로나19까지 인간과 미생물의 치열하고 기나긴 사투, 공존의 서사를 그 뒤에 자리한 과학적·의학적 요인을 짚어가면서 흡인력 있게 풀어낸다.
분자생물학부터 첨단 의학과 문화인류학적 보고까지 과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박진감 있는 이야기로 엮어 전염병의 과학과 역사를 다룬 교양서로서는 가히 결정판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이 책이 다른 책들과 차별되는 점은 거시적인 맥락과 미시적인 사건의 균형 잡힌 서술, 과학적 관점과 역사적 관점의 조화다. 인류사 초기의 아프리카, 고대 아테네와 중세의 유럽을 거쳐 21세기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개별적 사건의 감염병을 다루면서도 그 저변의 교역과 전쟁, 불평등과 빈곤, 인구 증가 등의 공통적인 요인과 미생물의 진화 과정을 결부해 전체와 세부를 넘나드는 서술을 이어간다. 역사를 뒤흔든 주요 전염병들에 관해 최신 역학과 의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보여주면서 왜 그 바이러스가 출현했는지, 이로 인해 인류에게 어떤 참극이 벌어졌는지 보다 생생하게 서술한다.
말라리아 원충의 생활사나 설치류와 벼룩, 사람의 몸을 오가며 페스트균이 대유행을 일으키는 과정 등 한눈에 내용을 이해하도록 수록된 다수의 그림과 도표도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미생물의 종류는 100만 종에 이르지만 인간에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1천415종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언급하는 ‘미생물’은 세균, 바이러스, 원생동물, 진균(곰팡이) 등 질병을 일으키는 현미경적 생물을 가리킨다.
저자는 40억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 미생물들의 출현과 진화 과정을 추적한다.
열대 우림에 도사리는 수많은 병원체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험에 처해 있으며, 개발도상국의 빈민가에서는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에이즈, 로타바이러스, 장티푸스 등이 발생하고 있다.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으로 인해 재유행이 초래되기도 한다. 치명적인 병원균의 공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신종 병원체의 발생 빈도는 계속해서 늘고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머물러 있다. 병원균과 인류의 장대한 역사가 담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미생물의 역사가 약 40억 년에 걸쳐 있는 데 비해 인류의 역사는 고작 20만 년이다. 미생물에게 인간은 찰나의 숙주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이 장대한 미생물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의 행동이 아무도 예측 못 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때로는 엄청난 파국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공존의 방법을 모색할 때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