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사유로 탈북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많다. 이들 탈북자들은 북한 이탈주민, 새터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통합 과정은 통일 국가의 미래라 볼 수 있다. 이들의 남한 사회 정착이나 사회 적응 문제도 주요 정책적 과제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탈북자들은 입국 후 12주간 하나원 교육과정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우선 교육을 통해 남한 사회를 배우게 하려는 목적이다. 교육 수료 후 이들은 전국 각지에 배정되어 첫 출발을 한다. 이들도 대개 서울 경기 등 수도권 배치를 희망하지만 지방에도 많다.
내가 만난 새터민 중에는 남한 사회 정착에 성공한 사람이 많다. 대부분 남한의 자유 경쟁체제에 빨리 적응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엔 북한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토대로 남한에서도 출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직접 만나 대화까지 나눈 황장엽 선생은 상당한 예우를 받다 돌아가셨다. 식사를 같이한 조명철 의원은 통일교육원장을 거쳐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현 국회에도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의원과 지성호 비례대표 의원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남한 정치인 이상의 정치 감각을 보인 점이다.
일전에 내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탈북민 출신 두 명의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남한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북한 경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이곳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나도 교수 재직 시 북한의 교수 출신 C의 멘토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 역시 식당 알바 등 고난을 거쳐 학위취득 후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탈북자 중에는 주식에 성공한 사람도 있고, 북한 음식으로 서민 갑부가 된 사람도 있다. 이들이 3만5천명 중 남한 사회 정착의 성공적인 모델인데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탈북자 중에는 이곳에 정착하지 못하고도 방황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이들 중엔 임대 아파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기초 생활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남쪽의 지나친 경쟁체제에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그 중 20여명이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북한의 일류 김책공대 출신이면서 단순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미국 이민계획이 성공했는지 알 길이 없다. 평양 출신 여성 K는 중국에서 브로커에 속아 남한에 왔다면서 재입북을 공개 요구하고 있다. 모두 남한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서독은 과거부터 동독 탈출자의 경력을 인정하여 서독 취업을 적극 알선해 주었다. 600여만 명의 동독 출신의 서독 탈출 행렬이 독일 통일의 토대가 되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는 배고파서 못 살겠고, 중국에서는 잡혀갈까봐 무서워서 못 살겠고, 남한에서는 몰라서 못 살겠다”고 토로한다. 탈북민들은 남한 사람들의 그들에 대한 의심과 오해가 더욱 괴롭다고 호소한다. 그들 중엔 외국인 노동자 보다 대접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면서 조선족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남한 정착을 돕기 위한 정부와 시민 단체의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