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라는 무한(無限) 화면에는 / 구름의 드라마, / 늘 실시간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네. / 연출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 그는 수줍은지 / 전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네…. 누가 염치도 없이 버렸을까. / 휑하니 껍데기만 남은 텔레비전이 / 무슨 면목없는 삐딱한 영정처럼 / 바위투성이 개울 한 구석에 처박혀 있네. / 텅 빈 텔레비전에서는 / 쉬임없이 / 서늘한 가을물이 흘러내리네.”
‘세계의 문학’ 2003년 봄호에 실렸고, 그해 미당문학상의 수상작이 된 최승호 시인의 시 ‘텔레비전’의 첫 6행과 마지막 7행이다. 시인은 하늘, 강물, 바위, 개울 등의 자연과 버려진 텔레비전을 대비시키면서 영상 문화의 비감을 ‘개울 한 구석에 처박힌 삐딱한 영정’으로 표현하였다. TV는 사회와 삶의 부도덕성을 그려냄으로써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화에 비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TV의 선정성은 자주 심각한 문제가 되곤 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우리나라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단 한 사람의 승리자에게 돌아가는 456억원이라는 상금 앞에서 455명의 사회 부적응자 또는 실패자는 모두 탈락이 되고 제거된다. ‘탈락, 제거’라고 했지만, 실상은 무참한 살육(殺戮)이다. 이 지나친 선정성과 물신주의의 폭력성에 대해 여기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나는 두 개의 드라마에 더 눈길이 간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슬의생2)와 ‘펜트하우스 3’(펜하3), ‘슬의생2’는 올해 6월 17일부터 9월 16일까지 매주 목요일 tvN에서 방영되었고, ‘펜하3’은 6월 4일부터 9월 10일까지 방영된 지상파 방송사인 SBS 금요 드라마이다. 우연인 듯 올해 6월에 같이 시작하여 9월에 같이 종영된, 온탕과 냉탕을 하루 차이로 왔다갔다 한 기분이 들게 만든 ‘슬의생2’에 ‘착한’ 드라마, ‘펜하3’에 ‘나쁜’ 드라마라는 모자를 씌워주고 싶다.
‘슬의생2’는 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으로 tvN 역대 드라마 중 최초로 첫 회 시청률이 10%를 기록한 드라마이다. 종편과 케이블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도 첫 회 시청률이 역대 1위이고 마지막 회 시청률도 14%를 넘겨 시청자들의 사랑을 제법 받았다. 이에 비해 ‘펜하3’의 시청률은 첫 회에 19.5%, 마지막 회에 19.1%이었다고 한다. 종편과 지상파라는 차이가 있지만, 첫 회에서는 거의 두 배의 시청률 차이가 나고 마지막 회에서도 5%의 차이를 보였다. 사람들은 ‘나쁜’ 드라마에 매력을 더 느끼나 보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는 나쁜 드라마가 더 좋은 것일까?
한국 사회의 모습은 TV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드라마가 사회를 그려내고 있기에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말이 ‘나쁜 펜하’에는 제법 들어맞는데, ‘착한 슬의생’에는 그다지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슬의생 드라마의 착하고 고운 의사들같은 의사 선생님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많이 있겠지? 코로나19의 퇴치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그 ‘착한’ 이들이 아니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