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대략 815만분의1 정도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당첨이 안 될 확률이 99.99…%라는 얘기다. 벼락을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배나 낮은 것이 로또복권 일등 당첨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도 매주 8백만 매 이상 복권이 팔린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위험부담이 적으면 버리는 셈치고 해보게 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는 데도 요행을 바라고 투기를 하는 것은 남달리 사행심이 강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일 터이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거액의 빚을 지고 삶의 막장으로 몰린 사람들이 456억 원이라는 거액에 눈이 멀어 0.2%의 확률에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전혀 아무런 탈출구가 없다가 일확천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풍족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이성을 마비시켜버린 거라고나 할까. 아무리 돈이 절박하더라도 죽을 확률이 99.8%인 게임에 목숨을 건다는 건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오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건 너무 끔찍한 현상이 아닌가.
카메라 앵글은 최후의 승자인 주인공을 쫓아가지만 그동안 죽어간 사람들은 아무런 해결도 없이 더 참담한 결과만 남겼을 뿐이다. 참가자 456명 중에 455명이 죽고 단 한 사람이 살아남는 건 사회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가 비록 거액의 상금을 손에 쥐었다 한들 456명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대다수가 처참한 일을 당한 사회라면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고 뭐겠는가. 지금 한반도의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도 거기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오징어게임’ 만큼이나 매스컴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게 ‘대장동사건’이다. 일확천금이라는 점에서는 양자가 닮았지만, 한 쪽은 목숨을 걸고 수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은 데 비해 다른 쪽은 땅 짚고 헤엄을 쳤다는 점에서는 천양지차다. 몇 사람이 수천억 원의 돈을 챙기면서 남을 죽이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편취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징어게임’ 승자가 차마 그 돈을 쉽게 쓰지 못한 것과는 달리 대장동사건 관련자들은 6년 근무 직원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주는 등 로비자금이다 고문비용이다 흥청망청 광란의 돈 잔치를 벌인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사행심이나 한탕주의가 횡행하는 사회는 분명 병든 사회다. 의식주가 절박하던 시절에 비해 몰라보게 경제사정이 좋아졌지만, 그것이 물질적 속박을 벗어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물질에 집착하고 예속되는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게 아닐까 싶다. 물질문명에 경도되어 정신적 가치를 등한시해서는 삶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풍요롭고 균형 잡힌 사회로 가려면 교육이나 언론도 중요하지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지금의 대권후보들 중에는 그런 인성과 지성과 품격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