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진작가 이종한<br/>해군사관학교 재학시절 카메라 잡은 이후<br/>첨단기법 이용 작품 제작 등 40년 넘게 왕성한 활동<br/>4일까지 포항 오원갤러리서 네번째 개인전
85세의 고령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첨단 기법을 이용한 디자인 사진 작품 제작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종한 사진작가. 사진을 대하는 그의 눈동자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작가는 해군사관학교 재학시절 졸업앨범 준비 위원장을 맡아 카메라를 알게 된 일을 계기로 현재 40년 넘게 사진과 함께하고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4일까지 포항 오원갤러리에서 네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종한 사진작가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처음 사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제가 사진을 해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것은 해군사관학교 생도 시절이었다. 딱딱한 군인 생활 가운데에서도 교내생활에서 아름다운 장면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던 벚꽃풍경, 해사반도에 휘몰아치던 겨울 파도, 훈련용 요트가 질주하던 모습, 심지어 생도들의 훈련 장면들까지도 젊은 저의 눈에는 너무나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은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아쉬워하면서 사진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진만이 이런 순간들을 포착하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
△직업적이라기보다는 좀 더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 한 계기가 된 것은 2008년 여름 포항 노인복지회관에서 사진 동아리 회원들과 출사를 하면서였다. 지금까지 그저 흥미로 찍어보던 사진에서 좀 더 깊이가 있는, 생각하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서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내 생각을 전달하면서 기록이나 작품으로 남을 사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미국 국적 소유자로 미국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전자통신 회사를 설립해 운영해 온 엔지니어이자 기업가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1979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Sprint Communications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하다 General Payphone Systems를 설립했다. 그 후 공중전화 사업은 약 20여 년간 호황을 누렸지만 휴대폰이 나오면서 이 사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풍경 사진가로 많이 알려져 있으신데 풍경을 찍게 된 계기가 있나.
△외국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옛 고향 생각이 애틋하게 나고 가끔 고향 풍경을 상상하고 그리워하게 된 것이 동양화 풍경 사진을 찍게 된 동기가 된 것 같다. 또한 미국에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사진여행을 하다 보니 미국 풍경 사진도 많이 담게 되었다.
-젊은 작가들도 다루기 쉽지 않은 고난이도의 현장 촬영과 포토샵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작품으로 화제가 됐는데.
△사진을 찍을 때 아무 작업이 필요하지 않도록 제대로 찍는 것이 최상이다. 하지만 포토샵을 통해 사진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고 사진의 한계를 넓힐 수 있다. 화가가 붓의 종류나 물감의 종류와 색상을 선택하듯이 사진가는 포토샵으로 색상과 밝기, 채도와 콘트라스트 등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 포토샵이나 라이트룸 작업은 현대 사진가로서는 필수 도구다.
-이번 개인전 ‘Death Valley CA USA’ 역시 그 기법으로 촬영한 작품들인가. 이번 개인전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이번 전시 사진은 다큐멘터리 성격을 띠기 때문에 포토샵은 전혀 하지 않았다. 현존하는 것들에 대한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어서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초기에 미국 개척자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금광을 찾아 서부로 몰려올 때 Death Valley는 꼭 건너야 서부로 갈 수 있는 요지였다. 바다보다 80m나 낮은 저지대의 소금호수, 사하라사막 이상으로 아름다운 모래결과 곡선이 살아있는 샌드 듄, 지금은 유령의 도시가 되어버린 금을 채굴하던 금광촌들…. 길도 없는 곳을 헤매면서 나침판만 보고 서부로 갔던 초기 개척자들의 피눈물 나고 어려웠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Death Valley는 너무나 아름답기만 하다. 그들의 발자취는 역사의 한 페이지이고 삽화이며 역사에 부서진 조각들이다. 퍼즐을 맞추듯 사진으로 그들의 발자취를 담아 보았다.
-지금까지 진행한 작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을 하나 소개한다면.
△지난해 전시했던 Vermilion Cliff(Wave) 작업은 잊을 수 없다.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는 듯한 사암이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의 예술작품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전 세계에서 매일 수백 명의 사진작가가 몰려온다. 미국 국토 관리국은 이 사암(砂岩) 계곡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그 많은 신청자 중 하루에 단 10명만 추첨하여 입장권을 주는데 마침 우리 팀이 당첨되어 촬영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진행 중인 미국을 소개하는 전시회 시리즈를 마치고 책자 ‘America West’ 사진집을 내고 싶다.
-향후 어떤 사진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
△한국의 동양화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Oriental Pictorialism을 좀 더 연구하는 후진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이 분야에 전문가는 이미 타계한 중국계 Chin-San Long과 Don Hong-Oai가 있으나, 일본인이나 한국인은 아직 없다. 제가 이 분야에 발을 디딘 첫 한국인이지만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옛 한국 선비들이 남긴 사군자나 풍경화에는 심오한 사상과 철학이 담겨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없는 우리만의 문화적 자산이다. 이런 것들을 사진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고 의무이기도 하다.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다른 얘기가 있다면 해 달라.
△내가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는 72살 때였다. 사진을 하면서 목적의식이 뚜렷해지고 신체적, 정서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러분들이 사진을 좋아한다면 너무나 훌륭한 선택을 한 것이다. 하루에 좋은 사진 한 장, 만일 그것이 힘들다면 일주일에 한 장만이라도 좋은 사진을 찍어보시라. 훌륭한 사진작가가 될 것이다. 용기를 가지시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할 때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