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용어에 ‘승자의 저주’란 말이 있다.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른 것이 본질적인 경쟁력 자체를 약화시켜 정작 시장에서는 승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경쟁에서 이긴 승자에게 무슨 저주가 생긴다는 말일까. 가격을 헤아리기 힘든 고가품을 놓고 경매를 벌인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점점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원래 생각했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 결국 물건을 차지했다. 하지만 실제 물건의 가치가 당신이 지불한 금액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나면, 당신은 경쟁에서 이기고도 손해를 보게된다. 이것이 승자의 저주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다. 아슬아슬하게 과학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수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이것이 나중에 대학 진학하는 데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비해 현저히 높은 아이들의 성적 수준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내신을 획득하지 못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승자의 저주는 자주 나타난다.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되면 당 차원에서는 다수당이 되기 위해 국민들이 원하는 공약들을 무차별적으로 내놓는다. 결국 그 선거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너무 무리한 공약들을 내놨을 경우 이행할 수 없게 돼 국민의 미움을 사게 되고, 그 다음 선거에서 표심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투표도 마찬가지였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탄핵을 주도했던 국회의원들은 이겼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가 찾아왔다. 국회 의석수만을 믿고 힘을 과시했지만, 결국 민심을 거스르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민심은 등을 돌렸고, 탄핵 주도 세력들은 2004년 18대 총선에서 참패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이 아닌 힘의 우위를 앞세운 밀어붙이기 전략은 결국 승자의 저주를 불렀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후보 역시 선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승자의 저주’에 맞닥뜨린 모양새다. 윤 후보는 민심에서 10% 남짓 홍준표 후보에게 뒤졌지만 당심에서 크게 앞서 어렵사리 후보가 됐다. 그가 경선 승리를 위해 치러야 했던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이번 경선에서 보수세력이 정권교체를 위해 반문재인 정서를 묶어내는 구심점으로 선택한 인물이 윤석열이라는 건 최종 확인됐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보수 혁신’의 분위기가 사라졌고, 2030세대가 바라는 공정과 정의 등 정치 전반에 대한 개혁 의지가 퇴색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특히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공정과 정의를 지지하는 2030세대로부터 윤 후보가 지지를 받지못한 것은 윤 후보가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지상최대 과제다. 윤 후보가 ‘승자의 저주’를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갈 지가 향후 대선승부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