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립연극단 정기공연 ‘무명’
‘무명’은 13세기 중국 잡극(雜劇) ‘조씨고아’를 부산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연출자 최은영 연출자(기군상 작)가 각색·연출한 작품이다.
시골의사 ‘정영’이 충성과 의리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처자식을 희생한 후 복수에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권선징악이 아닌 복수의 공허험과 허탈감에 대해 깨달음을 주는 줄거리를 하고 있는 연극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씨 가문이 몰살된 해가 기원전 597년이니 연극의 무대는 2천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나라 장수 도안고는 최고 권세를 누리는 조씨 가문에 적의를 품고 역적 누명을 씌운다. 9족(族)을 멸하는 반역연좌제에 걸려 조씨 가문의 부계 4촌, 모계 3촌, 처가 2촌 300여 명은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조씨 집안의 문객이던 정영의 도움으로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씨고아(무명)’는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다.
정영이 조씨 가문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자기 아들과 무명의 목숨을 맞바꿨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의 아내마저 “그깟 약속이 뭐라고, 그깟 의리가 뭐라고, 남의 자식 때문에 저 애를 죽여요”라고 울부짖으며 저 세상으로 떠난다.
정영은 무명을 ‘정발’이라 이름짓고 자신의 아들로 키운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정발이 장성하자 정영은 조씨 가문의 지난날을 고백하며 도안고에 대한 복수를 부탁한다. 결국 복수에 성공하지만 이들에게 남은 건 후련함이 아닌 공허함 뿐.
포항시립연극단 측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없이 공연되었던 작품이지만, 포항시립연극단의 ‘무명’은 여성 연출자의 섬세한 시각으로 작품을 재조명하였고, 각 배역들이 그 공간에서 살고, 제 방향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차분하고도 당차게 끌어내어 배우들의 풍성한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꾸어 줄 것”이라고 전했다.
계략에 의해 부모가 죽임을 당하고 그 원수의 양자가 되어 자란 ‘무명’이 20살이 돼 맞이하는 운명은 가혹하기만 한데…. 처절한 숙명 앞에서 가문을 이을 여자도, 멸문을 끝낼 남자도 거부하며 아무 것도 아니길 원하는 그녀 ‘무명’의 이야기가 화려한 액션과 빠른 극의 전개로 지루함 없이 무대에 펼쳐진다.
공연 시간 24∼26일 오후 7시 30분, 27일 오후 4시. 입장료 전석 5천원(20인 이상 단체, 장애인, 경로우대 3천원). 문의 270-5483.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