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규범이라는 틀을 씌워
서양미술사 스테디셀러 ‘서양미술사’의 저자 곰브리치는 서문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곰브리치의 이 문장은 자주 하지만 잘못 인용되곤 한다. 곧이 곧대로 읽으면 속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저자의 서문은 미술의 정의(定義)에 관해 논하고 있다. ‘미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 미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정된 하나의 틀로 미술을 정의할 수 없음을 말한다. 미술의 근본적 속성 중 하나는 ‘변화’이다. 시대가 변하고, 생각이 변화고,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미술도 변할 수밖에 없다. 미술은 끊임없이 시대와 관계하며 변하기 때문에 그 기능과 역할 그리고 가치가 시대마다 달라져 왔다.
예술과 기술의 관계는 사람의 몸과 정신의 관계만큼이나 복잡하고 미묘하다. 기술만으로 예술이 될 수 없다. 기술은 기능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술이 없다면 예술은 가능하지 않다. 예술행위는 정신활동이기 때문에 기술을 통해서 비로소 구현되기 때문이다.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면 심지어 미술의 역사 전체가 새롭게 기술될 수 있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미술은 곧 기술이었다. 미술가들은 기능인이었고 이들의 활동은 창작(創作)이 아니라 공작(工作)으로 여겨졌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정신활동이자 학문적 탐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이 국가 주도의 미술교육기관을 설립하면서 미술가들의 기능이 회화나 조각 등과 같이 아주 협소한 특정영역으로 제한되었다. 엄격히 말해 미술가 혹은 예술가가 있을 뿐이지 화가나 조각가 판화가와 같이 기능에 따라 분류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경직된 분류가 프랑스 왕립미술학교(일명 아카데미)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왕립미술학교의 교과과정은 대략 이렇다. 신입생으로 입학하면 아카데미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대가들의 걸작들을 모사한 판화작품을 따라 그린다. 보지 않고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다.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면 평면에서 벗어나 석고 조각상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고학년에 올라가면 실제 사람을 보고 묘사한다.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자세와 동작을 완벽하게 그릴 수 있도록 오랜 시간에 걸쳐 기술을 연마한다. 물론 실기 교육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림의 소재가 되는 고전의 내용을 배워야 했고 아카데미 교수들이 체계화한 미술이론도 교육되었다. 예를 들어 지금도 사용되는 역사화,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 등과 같은 그림의 종류가 프랑스 왕립미술학교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이렇게 그림의 주제에 따라 회화를 분류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가치중립적인 구별이 아니다. 주제에 따라 그림의 가치를 구분하는 회화의 위계질서이다. 사람에게 신분이 있었던 것처럼 그림도 무엇이 그려졌느냐에 따라서 등급이 나누어졌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사화를 그려야 했다. 역사화는 위대한 인물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이다. 영웅들의 위대한 행위에 상응하도록 그림의 크기도 웅장해야 했다. 절대왕정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왕을 신격화하고 그의 업적을 신성한 것으로 번안해 스펙터클을 연출하는 능력이 곧 미술가의 실력으로 평가되었다. 이때 미술가들의 창조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나 완전히 혁신적인 표현 방법의 실험이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교육되어진 대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야기를 이미 유행하고 있는 양식으로 시각화 하는 것이었다. 미술가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은 아카데미의 규범과 규칙에 철저히 순응해 등용문이었던 ‘살롱전’에 출품해 주목을 받고 마침내 귀족이나 왕실을 위해 역사화를 그리는 직책에 오르는 것이었다. 역사화를 그리지 않는 미술가에게는 그리고 아카데미의 규범에서 벗어난 미술가들에게는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미술사학자 김석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