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형상이 없는 미술작품을 가리켜 추상(抽象)이라고 한다. 원래 추상은 여러 가지 사물이나 개념에서 공통된 특징이나 성질을 추출하여 파악하는 인식작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연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추상은 구상과 대비되어 비구상적인 미술을 가리키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가들은 언제부터 추상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몇몇 미술가들이 있다. 러시아 출신으로 독일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바실리 칸딘스키, 네덜란드의 피트 몬드리안, 감각의 궁극을 탐구한 우크라이나 태생의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여기에 속한다. 이들 중 칸딘스키는 자칭 추상미술의 아버지이다. 그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미술에서의 추상은 고전적 미술 관념에 균열을 일으키며 현대미술을 태동시킨 여러 미술가들의 실험들이 종합되고 집결되어 나타난 미술현상이기 때문에 특정 미술가를 추상의 창시자로 지목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추상의 태동과 전개과정에서 칸딘스키의 역할과 미술사적 업적은 충분히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칸딘스키가 추상의 가능성, 다시 말해 대상을 그리지 않더라도 그림이 될 수 있다고 직감한 것은 1896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에서였다. 여러 작품들 중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끌로드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였다. “불현듯 나는 마침내 처음으로 한 점의 ‘그림’을 보았다. 카탈로그의 제목을 읽고서야 그것이 건초더미를 그린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림을 보아서는 알아볼 수 없었다. 대상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 조금은 창피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화가는 어떤 권리로 이런 식으로 불명확하게 그림을 그렸단 말인가. 이 그림에서 대상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먹먹하게 느껴졌다.” 모네의 작품 앞에서 칸딘스키는 지금까지 그림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졌던 대상이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그림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생각으로부터 그의 추상으로의 미학적 여정이 시작되었다.
칸딘스키에게 추상의 가능성을 계시한 모네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미술가이다. 인상주의는 사실주의와 더불어 고전미술의 문법을 파괴함으로써 현대미술의 빗장을 열어준 미술사조이다. 사실주의는 저널리즘의 매서운 눈초리로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시민사회로부터 잉태된 여러 사회문제들을 은유적 수사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미술에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부여했다. 반면 인상주의는 미술의 내밀한 조형원리에 집중함으로써 규범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미술에 퇴적된 고정관념들을 하나씩 제거해 갔다. 아카데미즘으로 대변되는 전통미술이 고정된 관념을 닫힌 원리에 입각해 그림을 그렸다면 인상주의자들은 그들이 직접 ‘본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보는가’하는 문제는 곧 ‘세계와 어떻게 관계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전미술이 배우고 익힌 것을 그려냈다면 인상주의는 본 것을 그렸다. 고전미술이 관념과 지식에 관한 것이라면 인상주의는 시각적 경험에 맞닿아 있다. 보는 것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는 필연적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과 대결할 수 밖에 없다. 칸딘스키가 보았던 모네의 ‘건초더미’는 이러한 근본적 물음에 대해 화가가 탐구해 가는 과정이다. 모네에게 건초더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저 황량한 벌판에 놓인 대상에 불과하다. 그가 정말로 그리려고 했던 것은 공간, 대상, 빛, 대기 등의 요소들이 시각적 경험에 작용하는 방식이다. 동일한 대상을 다른 조건에서 반복해 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모네는 추상이 아니라 건초더미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화면에 담았지만 칸딘스키는 그 안에서 대상을 넘어선 추상 회화의 가능성을 보았다.
/미술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