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 지났다. 낮과 밤, 추위와 더위가 반반이니 진정 봄날이다. 긴 겨울을 견디며 하늘과 땅의 좋은 기운을 빌어온 농부들은 봄보리 갈고 채소 씨앗 뿌려 춘경(春耕)을 시작하며 허물어진 담장을 고치고 파릇한 봄나물 뜯어 먹으며 한해의 풍년을 비는 철이다.
‘춘분에 비 오면 병자가 드물다’고 했는데, 겨울 가뭄을 씻어버리듯 비가 내렸으니 역병인 코로나도 사라지겠지, 견뎌 보자. 이맘때면 남에서 봄바람이 꽃내음 싣고 오는 데 꽃샘추위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심술부리니 멈칫멈칫 꽃망울을 펴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도 하늘의 기운을 닮아가는지 대선이 끝나고 좀 밝고 맑은 나라를 기대해 보려니 새 정치를 위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두고 시끄럽다.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청와대를 개방하여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윤 당선인의 꿈을, 안보 공백이 우려되고 천문학적 이전 비용이 든다며 예산편성을 거부하는 문 정권의 트집으로 갈등을 빚으며 평화롭게 이어 나가야 할 대통령직 인수인계가 난맥상이다. 향기로운 꽃바람 불어오려는 봄날에 이를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밀려와 가벼운 가슴으로 꽃길을 걷고 싶은 상춘객들에게 다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쉬움이다. 겨울에 입었던 두껍고 무거운 옷들을 빨아 넣고 가볍고 밝은 옷을 꺼내 입으려던 마음도 멈칫하고 창밖 하늘을 올려다본다.
코로나 역병이 창궐한 지 2년 2개월 넘어 16일 확진자 62만 명의 최고점을 찍고 22일에는 누적확진자 1천만 명을 넘었다. 국민 5명당 1명이 코로나바이러스 바람을 맞은 셈이니 한 가족 한 명꼴이다. 봄이 왔건만 꽃잔치와 꽃놀이도 못하는 억울한 마음인데 날씨마저 아직 겨울의 차가움을 밀고 있으니 더욱 봄날이 그리워진다.
마음을 달래려 창포마을 뒷산에 올랐더니 드문드문 하얀 매화꽃과 노란 산수유꽃은 만개했고 숲속 진달래는 발그레 눈만 뜨고 있었는데 봄꽃 바람이 좀 서둘렀나? 꽃샘바람이 늦게까지 질투를 하는 것인가? 그래도 남쪽에서 많은 꽃소식이 들려온다. 오히려 개화 시기가 평년보다 앞당겨 이번 주말쯤이면 봄의 전령사 벚꽃도 경주 엑스포공원에는 화려한 벚꽃 터널을 만들 것이란다. 산길 내려와 철길숲을 걸으니 노란 개나리가 환하게 웃고 붉은 홍매화가 얼굴을 붉히며 서서 답답한 마음에 산책 나온 시민들의 눈길을 끈다. 코로나로 많은 봄축제가 취소된 이 봄날, 자연의 심술이 못마땅하다.
전국적으로 꽃 소식은 평년보다 좀 빠를 것이라는데 예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면 뭘 하나! 꿀벌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집단 실종’의 슬픈 소식이 들려오는데…. 전국에서 최소 77억 마리가 사라졌고, 이상 기후와 해충 응애 벌레 탓이란다. 지난 겨울 고온화로 꽃이 일찍 피어 서둘러 꿀을 모으러 나섰던 힘 빠진 벌떼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폐사됐다는 얘기. 왜 이리 자연도 왔다 갔다 갈피를 못 잡는 걸까.
‘정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는 속담처럼 요즈음 새 정부 출범 앞에 날아오는 현 정부의 어깃장이 소중하게 익혀온 김칫독을 깨는 것은 아닌지….
탐스럽게 피어나는 흰 목련꽃 보며 사랑을 노래하고 싶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