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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로 가는 길

등록일 2022-04-03 18:30 게재일 2022-04-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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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항에서 바라본 해오름 전망대.

포항에 산다는 것만으로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걸어서 10분이면 반짝이는 윤슬이 펼쳐지니 출근할 때마다 눈이 환해지고, 파도 소리 배경으로 소나무 숲을 거닐며 눈 호강 귀 호강을 겸할 수 있다.

오늘 걸어볼 길은 영일만 북파랑길의 한 구간으로 해파랑길 18코스로 칠포해수욕장에서 오도리까지다. 길 가다 발견한 안내도에 이곳은 “동해안 연안 녹색길” 이라고 한다. 바다를 끼고 연결한 데크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물멍을 때리다 보면 칠포항에 다다른다. 칠포리 해안로 1546번길이다.

독서회 회원인 문숙씨가 세컨 하우스를 지은 동네이다. 회원들과 하루를 같이 밤을 보내기로 한 날, 도시와는 달리 고요한 밤에 항구까지 밤마실을 나갔다. 편의점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 사서 밤일하는 등대를 향해 걸었다. 코끝이 기분 좋게 시린 밤이었다. 우리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 목소리를 낮춰가며 웃었다. 한두 시간 먼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붙이고 다시 항구로 일출을 보러 가는데도 5분이면 충분했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날에 칠포항을 또 찾았다. 밤 산책을 하던 항구를 돌아서자제주도 어느 바닷가인가 싶은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검고 큰 바위가 듬성듬성 물에 몸을 담그고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바위에 낚시꾼들이 미리 와 찌를 드리우고 무언가를 열심히 낚는다. 아이들도 돌 틈 사이에 머리를 박고 친구를 불렀다.

가까이 가서 보려고 바닷가로 내려가니 굵은 모래에 몽돌이 뽀작뽀작 소리를 낸다. 돌 하나하나가 다 어여쁘다. 함께 걷던 남편이 하트모양의 돌을 손에 올려주며 자기 마음이라고 해서 웃었다. 우리 소리를 듣고 파도가 잽싸게 몽돌 사이를 빠져나가며 까르르 웃었다.

칠포성이라 불린 이곳 칠포리는 포항에서 수군만호진이 있던 곳으로 바다를 지키는 군사기지였다. 고종 8년(1870)에 동래로 옮겨 가기 전까지 7개의 포대가 있는 성이라서 ‘칠포성’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칠포(七浦)라고도 부르는데 절골에 옻나무가 많아서, 또는 해안의 바위와 바다색이 옻칠한 듯 검은 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제주 여행 중이냐고 답장이 왔다. 칠포항이라 하니 ‘이렇게 좋은 곳을 왜 몰랐지?’ 한다. 과거 군사 보호 구역으로 해안경비 이동로로 사용되었던 길을 동해안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탐방할 수 있는 트레킹 로드로 만들어 이제는 단절되었던 칠포리와 오도리 두 마을을 잇는 상생로가 됐다.

몽돌해변에서 나무 데크를 따라 5분 오르면 해오름 전망대다. 해오름은 포항-울산 간 고속도로 완전개통을 계기로 포항, 울산, 경주 3개 도시가 함께하는 동맹의 이름이다. 위 3개 도시 모두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지역이면서 대한민국에 산업화를 일으킨 ‘산업의 해오름’지역이라는 점과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의 ‘해오름’이 되겠다는 의미다.

걷다 말고 발아래 바다를 바라본다. 물빛이 하도 좋아 눈에 한참 담았다. 앞에서 보면 타이타닉호를 연상케 하는 배 모습이고 계단을 내려서면 돛대가 높이 솟았다. 뱃머리 쪽으로 걷다 보면 구멍 뚫린 발판 사이로 바람이 스스럼없이 드나들고 구멍을 통해서 속이 훤히 보이는 동해의 속살은 더 깊고 푸르다. 사실 이 표현은 남편의 시선일 뿐 고소공포증이 중증인 나는 멀리서 사진만 찍어 주었다.

전망대에서 오도리 간이해수욕장까지 1km 거리다. 가는 길에 갈매기의 까만 눈동자도 보고 주상절리도 찾으며, 드라마에서 치과로 나왔던 곳이 손님이 가득 찬 카페로 변신한 것을 확인하다 보면 오토캠핑장이 나온다. 주말엔 빈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인기다.

북파랑길을 자세히 더듬으니 보물상자처럼 숨은 명소를 발견한다. 차를 타고 수도 없이 그곳을 지나쳤어도 알지 못했지만, 속도를 늦추니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여러 사람 눈에 뜨이지 않아 조용히 산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곧 드러날 일, 인파가 몰리기 전에 자주 영역표시를 해야겠다. /김순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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