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사진가 이정철<br/>“청소년 시기 선물 받은 카메라가 지금까지 계속되는 인연을 만들어 줬죠”<br/> 장노출 기법 매진… “인위적으로 촬영 시간 연장 대상의 아름다움 극대화”<br/> 갤러리포항 운영위원 활동… “모든 감각 이용해 머리·가슴에 기록하고 파”
이정철 사진가. 그는 단순한 풍경 사진가가 아니다. 그의 사진 한 장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의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0년 포항 송도 사진을 발표하면서다.
사진은 1/125초로 찍는 게 보통인데 그는 1초에서 길게는 수 십분 시차를 두고 촬영하는 기법의 장노출 촬영으로 오랜 시간의 수많은 이야기를 모아 담는다. 작가 심상의 진솔한 이야기, 우리 주변의 숨겨진 이야기, 때론 언급하기 꺼리는 다양한 이야기, 깊고 넓은 세상 이야기를 그는 카메라로 담아낸다.
지난 14일 이정철 사진가를 만나 작가로서의 삶과 최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가로서의 사진 철학은.
△솔직히 모른다. 철학 공부도 하지 않은 나에게 이런 질문은 참으로 어렵다. 사진에도 철학이 있을까? 철학이 있다면 사진에서는 어떤 것일까? 이런 질문은 사진가가 평생을 안고 가야 할 과제다. 이 세상을 가장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예술이 사진이라면 사실의 사진, 의미의 사진, 의식의 사진으로 설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좀 더 예술적 접근방식이라면 사진은 더 이상 현실의 복제에 머물지 않고 작가의 의식을 재구성하게 되어야 한다.
-사진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은.
△벌써 4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린 청소년 시기에 선물로 받은 카메라가 지금까지 계속되는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무엇이든지 자랑하고 싶은 시절이었기에 사진이 놀이의 수단이 되었으며, 본격적인 사진 공부를 위해 다량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추구해온, 뭔가 차별화된 사진 작업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장노출 촬영 기법은 어떤 것인가.
△장노출 사진이란 단어 그대로 오랫동안 촬영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진 촬영은 자동으로 촬영되고 기록되지만, 장노출의 사진은 인위적으로 촬영 시간을 연장하여 촬영 대상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장노출 촬영에 매진하고 있는 특별한 이유는.
△우선 시간성과 시간이라는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시간의 근원적 시간, 시간적 성격이 시간성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더하여 나의 사진 작업에 접목한다. 나의 사진 작업에는 플랑크타임을 전제로 한다. 또한 인간은 하루에 생각을 5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는 전제를 붙인다. 1찰나는 1/75초이며, 여기에 5만 가지의 생각에서의 5만과 1찰나의 순간을 곱하면 11분 6초가 되는데, 이 시간의 양이 나의 장노출 촬영의 기본이 된다. 즉 나의 장노출 사진은 11분 6초로 모든 대상을 촬영한다는 것이다. 이 시간은 세상사 모든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며, 촬영되는 대상 하나하나에 나의 삶을 녹여 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노출 촬영 외에 진행 중인 작업은 무엇인가.
△대개 철저히 사람을 배제 시키는 사진 작업을 한다. 사진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을 대신하는 호소력 짙은 대상은 없는가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래서 찾아낸 대상이 돌과 소나무였다. 바다 사진 작업이 7년여 정도 되었다면 돌과 소나무 사진 작업은 사진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뤄지고 있다. 소나무의 두꺼운 껍질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스스로를 이겨 나가는 인생을 은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의 사진 작업은 바다 사진 작업과 무관하지 않다. 바다 장노출의 사진 작업에서 진경산수화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바윗돌이 필수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개인 작업 외에 지역 사진 예술 발전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인가.
△갤러리포항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갤러리포항은 지난 1월 22일 개관 전시를 시작으로 우선, 지역작가를 중심으로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전시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 사진가와 사진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자 한다. 포항을 좀 더 알리기 위해 ‘바다가 그리운 이유’라는 주제로 전국의 사진가들을 초대해서 포항에서 매년 기획전도 하고 있다. 올해 세 번째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동해안의 아름다운 비경들을 소개함으로써 좀 더 차별화된 사진 작업으로 이끌어 가고자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기록은 기억을 뛰어넘는다’는 말이 있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미에 기본을 둔다. 감각적인 미보다는 정신적인 미에 비중을 두면서 아름답다는 표현에 맞는 것을 발견했다면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머리와 가슴에 기록하고 싶다. 또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바람과도 같은 사람이고 싶다.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 바람이듯 바람과도 같은 후원자이고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