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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방

등록일 2022-05-26 18:08 게재일 2022-05-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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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에 새 집무실을 마련하고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개방했다.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왜 돈과 수고를 들여가며 집무실을 옮기려고 하느냐는 반대여론이 많았음에도 후보시절의 공약을 관철한 것이다. 오랜 세월 권위의 상징이자 금단의 성역이었던 곳이 활짝 열려 일반 시민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휴식공간이 된 것은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내부를 공개하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 그 규모나 시설이 과연 현대판 구중궁궐이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

윤 대통령이 청와대 입주를 한사코 거부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를 내려놓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한다. 그게 집무실을 바꾼다고 될 일이냐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청와대라는 상당한 혜택을 포기하는 단호한 결단력에서 그 가능성을 보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취임한 지 2주일 남짓 된 지금까지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은 날마다 사가(私家)에서 집무실로 출퇴근을 하면서 대통령의 거동이 수시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출근길에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는 모습도 전에는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윤 대통령이 인용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도 있지만, 청와대라는 구중심처로 들어가 버렸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집권자에게 많은 권력이 부여된 대통령중심제이다. 대통령이 그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면 삼권분립을 무력화하고 법치를 파괴하는 독재도 가능하다는 걸 지난 정권이 잘 보여주었다. 더구나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혀 그릇된 방향으로 가게 되면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것도 실감했다. 지도자가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관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오만이나 권위의식에 빠지는 것도 못지않게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된다. 온갖 국정과제를 대할 때마다 겸허하게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놓고 사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선책을 찾아야 과오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을 흔하게 듣는다. 그것을 인지상정이라고 당연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실지로 심리학적인 실험이나 생리학적인 측면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승자의 뇌’라는 책을 쓴 뇌신경 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권력을 잡게 되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출을 촉진해 보상 네트워크를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을 더 과감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게 한다. 또한,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한다. 중독된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권력은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사람은 권력이 많아지면 오만해지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타인을 자신과 차별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거기다가 구중궁궐 같은 곳에 거주하다보면 점점 더 민심과는 괴리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아무튼 일제 때부터 100여 년간 권력의 상징이었던 곳이 개방되는 것을 계기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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