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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뱅크시에게 열광하는가?

등록일 2022-06-06 18:03 게재일 2022-06-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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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영국 남부 사우스햄튼 종합병원에 기증한 뱅크시의 그림 ‘게임 체인저’.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홍길동 같은 영국 미술가가 있다. 뱅크시(Banksy)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그는 브리스톨 출신으로 1974년 태어났다는 것 이외에 알려져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잠든 도시의 밤을 누비며 건물 외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고 사라지는 그를 가리켜 그래피티 아티스트 혹은 스트리트 아티스트라고 부르지만 미술가 스스로는 자신을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한다. 그를 부르는 명칭이 어떻든 간에 분명한 것은 그가 우리시대 대중들을 가장 열광시키는 미술가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자유에 큰 가치를 두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규정되어 진 것에 대한 저항한다. 이들의 낙서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부정적이다. 공공기물을 훼손하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반달리즘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뱅크시의 작품만큼은 다르다. 상업주의 미술에 반대해 누구도 소유할 수 없도록 건물 벽면에 그렸지만 뱅크시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작품은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자 뱅크시는 엉뚱한 일을 벌였다. 2013년 어느 날 뱅크시는 센트럴 파크에 노점을 깔고 자신의 그림을 팔기 위해 내놓았다. 이것이 뱅크시의 깜짝 이벤트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시카고에 사는 한 남성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그림 4점을 60달러에 구입했다. 이것이 뱅크시의 원작인 것이 밝혀지자 그림 값이 순식간에 45만달러로 치솟았다. 또 이런 일을 벌이기도 했다.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그림을 걸었다. 영국박물관 전시실 벽면에 소를 사냥하고 쇼핑하는 원시인 그림이 그려진 돌을 전시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현대미술관에서도 비슷한 장난을 쳤다. 이 일로 ‘뱅크시 당했다’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뱅크시는 2017년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 더 월드 오프(The walled off)라는 이름의 호텔을 열었다. 베들레헴은 가장 중요한 기독교 성지 중 하나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분쟁지역이기도 한 이곳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세워진 높은 장벽이 있다. 뱅크시는 장벽 바로 옆에 호텔을 세웠다. 내다보이는 유일한 풍경은 높은 장벽 뿐이고 하루 종일 해 드는 시간도 고작 25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호텔 벽면 곳곳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뱅크시의 호텔 전체가 평화와 인권을 위한 기념비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지만 특히 3번 객실 벽면 장식 그림이 큰 울림을 준다.

침대 머리와 맞닿은 벽면에 두 남자가 그려져 있다. 이스라엘 군인 복장의 한 남자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팔레스타인 남자가 깃털을 날리며 베개 싸움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복잡한 역사와 더 복잡한 정치적 갈등이 불러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을 함축하는 뱅크시의 그림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문구처럼 가슴에 확 와 닿는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뱅크시는 영국 남부 사우샘프턴 병원에 ‘게임 체인저’라는 그림을 기증했다. 가로 세로 1미터 크기의 흑백 그림에는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을 선택하는 대신 마스크를 착용한 간호사 피규어를 높이 들고 있다. 코로나로 모든 희생을 감내하는 의료진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기증된 그림은 경매를 통해 1천680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260억원에 판매되었고 수익금은 모두 의료진과 환자를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뱅크시의 그림은 어렵지 않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도 뱅크시를 거치면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메시지는 약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해진다. 뱅크시의 메시지는 항상 가장 현실적이다. 뱅크시는 관념적이지 않다. 뱅크시에게 정의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그리고 그런 뱅크시는 분명한 변화를 일으킨다. 미술이 이래야 하지 않는가? /김석모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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