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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첨단 과학 기술이 융합된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등록일 2022-06-20 20:00 게재일 2022-06-2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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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가 만났다<br/>서성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범죄도시 2가 1천만 관객을 동원한 28번째 한국영화가 됐다.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상은 한국영화가 세계 영화시장의 절대 강자임을 확인시켰다. 영화는 이미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세계적 공용어가 되고 있다.

영화는 오락과 예술을 넘어 첨단 과학 기술이 융합돼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가는 4차 산업의 핵심이다.

대구가 한 때는 한국의 헐리우드였으나 지금은 영화 소비도시에 머물고 있다. 젊은 영화인들을 이끌고 대구의 영화산업 부흥에 앞장서고 있는 서성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그는 대구가 영화 소비도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독려한다. “영화 인프라를 확충하는 일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이라며 “250만 대구의 문화 예술은 ‘선택과 집중’ 아닌 ‘다양성’을 위해 영화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만관객 동원 한국영화 시장서 대구는 소비도시로 그쳐

지역 청년창작자 지원과 함께 외적환경 극복 시급한 과제

250만 도시 걸맞게 문화예술에서도 다양성 추구해야할 때

대기업·서울 중심 벗어나 대구 만의 강점 살린 영화도시를”

 

- 윤석열 대통령이 영화인들을 초청해 격려하면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겠다’고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꼭 지켜지길 바란다. 지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도 아직 해결이 안 된 상태인데, 간섭은 안 될 말이다.

 

- 영화의 세계적 발전 추세와 한국 영화는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하나.

△한국영화는 개화기에 도입된 이후 세계적 호평을 받는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K-POP, K-드라마 등 한류가 확산됨에 따라 한국 영화에 대한 해외 인지도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한국 영화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 기술인 AI(인공지능),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기술 간 융합을 통해 영화 기술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 관련 원천기술의 높은 해외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체계적인 기술 개발 로드맵이 필요한 시점이다.

 

- 대구가 한국 영화의 중심지였던 적이 있었다. 기억할 만한 대구 출신 영화감독은 누가 있나.

△대구는 한국 근대 예술의 근거지다. 6·25 한국전쟁은 대구를 문학 음악 미술 등에서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한국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1962년 영화법을 개정해 영화사 등록여건을 강화시키고 전국 71개 영화사를 16개로 통폐합했다. 이때부터 서울로 집중되면서 대구의 영화산업이 쇠락해 진 것이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을 비롯, 국어교사에서 영화감독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창동 감독, 그들은 대구에서 영화적 소양을 키웠다.

제작과 감독 촬영 편집 등 혼자서 만들어낸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세계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를 알린 배용균 감독도 대구가톨릭대 교수였다. TV의 드라마 PD에서 상업영화로 성공하고도 독립영화의 길을 모색했던 영원한 영화 청년 박철수 감독도 대구가 낳은 영화인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인 1932년 한국영화사의 대표적 영화 ‘임자없는 나룻배’를 만든 이규환 감독도 대구 출신이다.

6·25전쟁이 막 끝난 1955년, 출산한 지 한 달 되는 딸을 업고 여성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미망인’을 찍은 박남옥은 대구의 여성과 영화인이라는 이미지를 영화사에 새겨놓았다.

 

- 현재 대구 영화계의 사정은 어떠한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한국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대구는 영화에서 소비도시로 그 역할이 제한되고 있다. 문화 예술이 경제 발전의 힘이라고 하면서 첨단 과학기술의 융합인 종합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최근 지역 젊은 영화인들의 노력은 눈이 부실 정도다. 박재현 감독의 ‘나랑 아니면’이 지난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단편 경쟁 부문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6월에는 박찬우 감독의 ‘국가유공자’가 평창국제영화제 한국단편 경쟁 부분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김정원 감독의 ‘희수’는 전북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고 스페인 빌바오 단편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국내외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김정원 감독이 ‘희수’로, 김현정 감독이 ‘흐르다’로 데뷔했고 유지영 감독은 ‘Brith’ 촬영을 마치는 등 3명의 여성 감독이 모두 장편을 만들어내 대구영화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 대구 영화계의 과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최근 지역 청년 창작자들의 성과를 살리면서 악화하는 영화계 외적 환경을 극복해 내는 일이 지역 영화계의 시급한 과제다. 대구만의 영상영화도시로 발전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역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이미 영화 산업으로 자리 잡은 서울의 대형 영화사의 제작 배급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 대구만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해 나가며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켜 대구에 적합한 영화도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오오극장 대표도 맡고 있다. 대구 오오극장은 어떤 곳인가.

△독립영화전용관으로 7년 전인 2015년 2월11일 인디스페이스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개관했다. 영화인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과 관객들의 십시일반 성금으로 설립됐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데 이름처럼 좌석수가 55석뿐이다.

오오극장은 가능하면 지역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을 소개하려 노력한다. 전국적인 우수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중요한 미션이었지만 지역의 영화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 역시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영화 상영 후에는 GV(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하고 있다.

 

- 독립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상업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영화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이다. 흥행을 목표로 하고 대박을 터뜨려 제작비를 건지고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영화와 달리 비상업적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영화다. 그러니 이야기 전개 방식도 마케팅 면에서 유리하게 만들어지기보다 제작자나 감독의 주제의식을 표출하기 위한 내용과 형식을 담아낸다.

보통 15억 원 이하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부른다. 장편 영화는 편당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언제 어떤 영화가 히트 칠지 모른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를 제작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흥행위주의 상업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다루며 예술성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독립영화는 한국 영화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대구의 독립 영화와 단편영화는, 또 대구단편영화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대구에는 독립영화 중에서도 상영시간 40분 이내의 단편 영화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2017년 유지영 감독은 순수 대구 제작진으로 장편 독립 영화 ‘수성못’을 찍어냈다. 대구의 장편 영화 제작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올해 23회째를 맞는 대구단편영화제는 2000년 3월 대구에서 만들어진 대구독립영화협회가 같은 해 11월 창립영화제를 열면서 시작됐다. 현실적으로 대구 지역 청년 영화인들의 제작 여건을 고려한 선택이 상업영화 아닌 독립영화였고 장편 아닌 단편영화였다. 해마다 1000편이 넘는 경쟁 단편 영화들이 출품되는데 여기서 성공하면 장편으로, 또 상업영화로 나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 영화 생태계가 건강해야 한다는데 영화 생태계는 어떻게 작동하나.

△영화 생태계는 교육부터 제작, 후반작업, 배급, 마케팅, 상영까지 사업 분야가 명확히 나뉘어져 있다. 따라서 분야별 지원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될 수 있어야 한다. 한 편의 단편영화도 제작자 감독 배우에서 촬영 조명 등 15명 정도의 제작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영화 제작이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영화 한 편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영화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영화 산업은 대기업 중심, 서울 중심으로 구성돼 지역에서 영화를 할 환경 조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 대구영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영화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화학교를 운영하고 지금은 대구영상미디어센터가 맡고 있다. 열악한 대구 영화계는 지역 영화인과 영화 지망생들을 서울 등으로 빠져나가게 만들고 있어 이들을 붙잡아 지역 영화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영화 아카데미 연출전공 11기 출신이다. 대구에는 그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영화 교육 기관이 없고 대학에도 영화과가 없다.

대구에는 영상위원회가 없고 대구영상미디어센터가 교육 기관의 역할과 함께 영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대구시가 문화관광부와 공동으로 설립해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이 수탁 운영했다. 그러다가 2019년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이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운영하다가 올 2월부터 단독 운영하고 있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영화와 창작 활성화를 위해 대구영화학교를 운영하고 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장비와 창작지원 사업을 통해 지역 미디어 인력 양성과 제작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는 창작 지원활동뿐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 대구 영화 산업은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나.

△영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스튜디오를 건설하고 촬영 장비를 구비하는 것이다. 문화 예술이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낸다면 영화야말로 30년 후 먹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예술 작가를 키우는 일, 크리에이티브를 키우고 창작과 과학 기술이 융합한 예술이 영화다. 그 역량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구는 250만 도시다. 문화와 예술에서도 도시 규모에 걸맞은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때이지 더 이상 ‘선택과 집중’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이젠 영화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대구단편영화제는 장편까지 포용하도록 판을 더 키워야 한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교육이라는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고 대구 영화의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영상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 대구 영화는 더 큰 힘이 필요하다.

 

- 영화계에서 바닥부터 다져왔다고 했다. 대구 영화계와의 인연과 역할은 어디서부터인가.

△대학(연극영화학과)을 졸업한 뒤로 줄곧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고 대구에서도 대학에서 영화 강연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07년 결혼 후 대구로 와서 본격적인 영화인의 길을 걸어왔다. 대구단편영화제 심사위원을 10년 간 맡으면서 지역 영화 생태계를 지켜봤고 2017년 대구경북영상영화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되면서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와 함께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소장을 맡아 2019년에는 영화진흥공사의 공모사업을 통해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이 대구영화학교를 운영하게 되었다. 이런 일들에는 지역 젊은 영화인들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땀이 큰 힘이 됐다.

 

- 영화인으로서 후회나 바람이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 배우가 됐더라면, 감독이 됐더라면, 제작자가 됐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러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영화라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영화라는 소신을 지켰으니 영화는 내 인생인 셈이다.

 

□ 서성희(徐成姬)

대구 출생. 성화여고, 청주대 연극영화학과. 경북대 대학원 경영학석사. 동국대 영화영상학 박사.

경일대, 영남이공대 초빙 및 겸임교수, 계명대 영남대 외래교수.

한국영화기획정보센터, 이우영상 기획실 근무.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회원, (전)기획이사.

현)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

고교 시절엔 무용을 했다. 뮤지컬 배우 남경주를 보고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청주대에 지원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서울의 충무로 영화사 기획실에서 수입영화의 홍보와 배급, 한국영화 제작회의 등을 거치면서 영화계 실전을 익혔다.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된 것도 모두 영화에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처음엔 직접 연기하는 배우의 길을 희망했는데 제작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지금은 영화 기획과 행정 지원을 맡고 있다.

 

/이경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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