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물이라도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면 정이 든다. 특히 자동차는 내 몸과 함께 움직여서 그런지 더 애정을 느끼기 쉽다. 8월 9일 서울에 내린 폭우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십수 명에 이르렀던 날, 지인은 차로 외출했다가 귀가 길에 비가 터널에 가득 차서 바퀴가 둥둥 떠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 본인도 두려웠지만, 무엇보다 차를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면서 차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한다. 이렇게 인간과 전혀 닮지 않은 자동차도 오랜 시간 같이 보내면 생물처럼 느껴지고 아끼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존재가 사람과 똑같이 생기고 말도 한다면 어떨까? 지난 6월, ‘파친코’의 감독 코고나다가 만든 영화 ‘애프터 양’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주지만, 특히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시대 배경은, 사람과 똑같이 생겨서 테크노 사피엔스라고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상용화된 미래 사회이다.
제이크와 키라 부부는 중국인 딸을 입양하고 중국 문화를 교육해 줄 테크노 사피엔스인 양을 구매한다. 제이크는 찻집을 운영하고 부인은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기도 하고 무엇보다 중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과 함께 4인 가족 댄스경연대회에도 출전하며 양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듯이 보인다. 이렇게 보면 제이크 가족이 양을 대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이 고장 난 후 양의 기억을 재생해보니 양은 제이크의 가족이 될 생각이 없었다. 양은 제이크 부부가 딸 미카와 가족사진을 찍을 때 오라고 하자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응한다.
더군다나 양은 제이크가 혐오하는 복제 인간 여자를 몰래 만나고 있었다. 양이 인간이 되고 싶어 했느냐는 제이크의 질문에 복제인간 에이다는 너무 인간중심적이라고 비웃는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영화나 소설에서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로봇을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양과 에이다의 이런 태도는 당황스럽다. 양의 기억에 에이다가 나올 때마다 ‘나는 그냥 멜로디가 되고 싶어, 그냥 하늘이 되고 싶어, 그냥 바람이 되고 싶어, 그냥 바다가 되고 싶어.’라는 노래가 흐르는 것은 의미가 깊다.
우리는 사랑한다면서 사실은 그 대상이 나의 필요와 이익에 충실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양이 고장 난 것도 4인 가족 댄스대회 때이다. 제이크 부부는 양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양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양의 마음도 그들과 같으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이 양을 가족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간중심적인 착각이었을 뿐이다.
스트어트 러셀의 책, ‘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에는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할 가능성을 염려하면서 인간에게 이롭기만 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자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앞설 가능성을 염려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게다가 인간이 기계를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으로서는 안드로이드를 인간중심적으로 대하지 않고 세계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 더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