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희정 시인<br/>시 ‘보들레르의 평전-도서관에서’는<br/>더 없이 낯선 진술을 뽑아내기 위해<br/>숱하게 머리를 찧고 있는 시인 상징<br/>‘시를 하는 사람’ 이라 불리면서<br/>모든 세대 아우르며 공명하고 싶어
포항의 신진 이희정 시인이 최근 첫 시집 ‘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시인동네)을 출간했다. 시집에는 나와 이웃, 나와 타자, 나와 사물과의 교감을 통해 삶의 페이소스를 이끌어내는 71편의 시가 실렸다. 수록된 작품들은 행간을 아우르는 힘과 편편이 일상에서 건져 올린 스토리에 상상력이 조응하며 읽는 재미를 더한다. 명징한 은유와 맥락을 관통하는 상징, 정형의 텐션과 세련된 시어로 자신과 이웃의 모습을 소환해 독특한 화법을 구사한다.
시집 해설을 맡은 이강엽 대구교육대 교수는 이 시인의 시편에 대해 “시인의 첫 시집이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같은 장도(壯途)를 격려해줄 필요가 없다. 모름지기 위업을 이룬 사람이라면 언제나 그 첫걸음에 마지막 걸음까지의 행보가 예비 되는 법이다”라면서 “이희정 시인의 오랜 습작의 역량이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으며, 신예 시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신선한 안정감이 시집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고 평했다. 지난 4일 이 시인을 만나 첫 시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2019년 등단 이후 첫 시집을 펴냈는데, 소회를 듣고 싶다.
△첫 시집은 첫사랑과 같아서 그 색이 오래도록 바래지 않는다고 한다. 시를 읽고 쓰는 날은 나를 돌아보는 날이었다. 오롯이 자신에게 열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세상을 향한 사랑 속에 구원을 꿈꾸며 나의 구원만큼 타인의 구원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오는 동안 곁이 되어준 귀한 인연이 많았다. 이 시집은 마법처럼 생의 고비마다 0.1 그램의 깃털로 붙들어 준 나와 이웃에 대한 헌시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많이 남은 길 위에 “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밝은 빛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시의 주된 소재와 마음에 드는 시를 소개한다면.
△도서관에서 책 만지는 일을 하며 틈틈이 시를 쓴다. 내 시의 소재는 주로 불편한 것들에서 온다. 달리 말하면 자아를 억압하는 환경이나 낯선 대상이 쓰게 한다. 대부분 일과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시적 대상이 발견되곤 한다. 시인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시를 고르는 일이란 쉽지 않다. 내 경우에는 ‘그때마다 달라요’가 맞을 듯하다. 순간 떠오르는 시는 ‘보들레르의 평전-도서관에서’이다. 서가의 열린 창으로 작은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발을 멈추고 숨소리조차 죽인 채 반나절을 함께 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몰려들자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며 출구를 찾아 몸부림쳤다. 위기에 몰린 날개의 비명이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호기심 사이에서 찢어지고 있었다. 그날 갇힌 건 새가 아니라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시 창작에는 발견과 도약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첨부된다. ‘현대’라는 외투를 입은 시조라는 캐릭터 또한 다르지 않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언어적 모험은 일상의 틈을 벌리고 감추어진 의미를 발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 시는 마치 격렬하고 자유분방한 보들레르처럼 익숙하지만 더없이 낯선 진술을 뽑아내기 위해 창문이 창공인 양 숱하게 머리를 찧고 있는 시인을 상징하고 있다.
-시집을 읽고 주변의 반응, 평론가들이나 시인들은 어떻게 평가하나.
△행간마다 남다른 깊이와 탄탄한 문장의 힘이 느껴진다는 평이 많았다. 소재나 비유에 있어 진부함을 벗어던지고 신선한 율격으로 장착한 참신하고 개성 있는 감각이 돋보인다고 한다. 특히 점묘법으로 풀어낸 시집의 해설 또한 시를 감싸 안고 있는 듯 말랑하고 유려한 문체로 작품과 해설을 한 호흡으로 내리읽게 해 시집 읽기의 묘미를 더해 준다고 했다.
-코로나19 역병, 지구온난화 등 힘든 시대를 보내고 있다.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문학이 나의 진술과 타자의 고통 사이에 발생하는 시적 거리 좁히기라 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나와 타인에게 건네는 위안이자 그 어떤 외부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내면의 에너지다. 내가 멈추지 않는 한 문학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계획하는 것이나 바람이 있다면.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시를 하는 사람’이라고, 마치 음악 하는 사람처럼 대답할 것이다.
나의 시는 외연적으론 자유시로 읽히지만 속살을 들여다 보면 현대시조로서의 단아한 율격이 내장되어 있다. 모든 창작에 있어 진부함은 독 묻은 시체와 같다. 어디로든 향할 수 있는 융합 플랫폼으로 선조들의 미의식을 현대 언어의 과장과 압축을 제 리듬으로 풀어내 k-팝 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공명하고 싶다. 근무하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청소년들의 내면을 확장하며 시로써 생기(生氣)하는 삶의 통로가 되고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