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건축물과 걸음을 옮길수록 느껴지는 이국적인 풍경들. 수백, 수천 년 켜켜이 쌓인 도시의 역사와 문화는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에 들르지 않더라도 거리 곳곳에 예술이 흐르고 문화가 펼쳐지는 도시, 삶의 여유와 낭만이 삶의 단면인 도시야말로 현대인이 지향하는 도시의 모습이다. 영국의 공업도시 리버풀이나 지중해의 항구도시 프랑스 마르세유 같은 도시들 말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 그룹 비틀스의 고향 리버풀은 한때, 가난과 실업을 대표하는 쇠락한 도시였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리버풀은 도시 곳곳에 비틀스의 숨결을 심었고, 음악, 미술, 스포츠 등의 다양한 문화 인프라로 도시를 가난에서 구했다.
마르세유 역시 마찬가지다. 높은 실업률과 많은 이주 노동자들로 슬럼화되었던 마르세유는 흉물로 전락한 담배 공장을 예술가들에게 임대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냈다.
문화를 통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이는 관광산업의 성장과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졌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러한 문화 활성화가 우리 구미에 필요하다. 지난 50년 경제발전의 중추도시로 산업 발전과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구미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 매우 특별한 도시다. 산업현장에서, 생업 일선에서, 우리 부모 세대가 흘린 땀과 눈물 덕분에 우리는 가난과 배고픔을 이겨내고 공부도 할 수 있었고, 3만 불 시대도 열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성장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구미의 노고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구미가 지금 정체냐 지속성장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도약과 후퇴를 결정하는 중대한 갈림길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산업 질서의 재편은 구미에 더 큰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더 큰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필자는 민선 8기를 출범하며 낭만과 품격이 있는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제대로 내세울 축제 하나 없는 구미에 대표 명품축제를 육성하고, 미술관,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의 문화 인프라도 유치해야 한다. 침체된 원도심 구미역 인근 1, 2번 도로와 인동 시가지도 활성화시켜야 한다. 문화·예술을 곁들여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마침 구미는 내년 10월 법정문화도시 지정을 목표로 시민들과 함께 문화도시 구미의 청사진을 그리는 중이다. 핵심 키워드는 일과 삶이다. 구미가 가진 산업과 노동, 그 의미와 가치를 통해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문화도시로 나아가는 데 방점을 두려 한다. 서면평가와 현장평가를 통과하고 최종 예비도시 선정을 앞두고 있는 만큼, 문화가 시민들의 일과 삶 속에 녹아내릴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일 방침이다.
지금까지 구미문화는 척박했다. 경제와 산업에 치중하느라 문화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산업과 문화는 별개일까. 트위터와 페이스북, 구글 등의 첨단 테크 기업들이 몰려있는 실리콘밸리를 보자.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는 다양한 문화 예술 공연이 상시로 열리는 창의적인 도시로 꼽힌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이 가능했던 건 그러한 다양성과 창의성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다양한 인간의 행동 스펙트럼이 어떻게 조합되는가에 따라 문화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즉,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도시의 문화와 정체성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결국 사람이다.
이제 구미는 기업도시, 공단도시에 더해 풍부한 문화적 색채를 느낄 수 있는 문화도시, 낭만이 흐르는 예술도시로 나아가려 한다. 영국의 공업도시 리버풀이나 프랑스 마르세유처럼 구미의 문화자산으로 구미의 정체성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도시. 그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싶다.